일곱 살 난 아이를 키우는 친구에게서 웃긴 일이 있었다며 전화가 왔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밥을 차려 주고는 곁에 앉아 먹는 모습을 지켜봤단다. 밥숟갈에 멸치 볶음을 연신 얹어 주기만 할 뿐, 밥 한 술 뜨지 않는 엄마가 염려되었던지 “엄마는 왜 안 먹어?” 하고 아이가 물었단다. 친구는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단다. “엄마는 너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친구는 무어가 그리 우스운지 한참을 낄낄거린 후에야 뒷말을 겨우 이어 갔다. 사실은 뷔페에 다녀온 탓에 배가 찢어지게 부른 상태였다고, 아이가 반찬 투정 할까 봐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어쩌면 너희 엄마도 어릴 적 너를 이렇게 속였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친구의 천기누설에 우리 엄마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를 키우며 크고 작은 거짓말을 얼마큼이나 해 왔을까.
그러고 보니 최근에도 진위가 의심되는 사건이 있었다. “아유, 나는 너한테 바라는 거 아무것도 없어. 내 딸이 행복하면 그걸로 그만이야.”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한숨 섞인 엄마의 목소리에 헤헤 웃으며 넉살을 떨었다. “엄마 소원 성취하셨네. 나 요즘 무지무지 행복한데.” 작기는 하지만 이 한 몸 누일 방 있고, 대단하지는 않지만 내 직업 있고, 큰돈 벌지는 못해도 신용카드 결제 대금 연체 한번 한 적 없으니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냐고 내가 말했다. 그러나 엄마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그 돈으로 먹고살면서 취미 삼아 일해야 행복한 거지, 돈을 벌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지금이 행복하기는 무어가 행복하냐며 나를 들들 볶아 댔다. 엄마의 잔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서도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야 마는 엄마라는 사람. 앞뒤가 맞지 않는 엄마의 말은 거짓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거짓말 탐지기로 엄마의 속마음을 조사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까. 검사 시작하겠습니다. ‘네’ 또는 ‘아니요’로만 대답해 주세요. 당신은 따님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당신은 따님이 행복해지기를 소망하십니까? 네. 당신은 따님을 통하여 본인의 행복을 실현하고 싶으십니까? 아니요. 그래프가 심하게 요동치는데요. 다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따님의 행복을 원한다기보다는 당신이 그려 놓은 이상적인 미래에 따님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인정을 받아 결국은 본인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요? 아니요,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엄마의 진심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알 길 없다. 다만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스스로의 거짓말이 너무나 감쪽같았던 나머지 당신마저 깜빡 속아버린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이러한 엄마를 원망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 나 역시 여태껏 엄마에게 무수한 거짓말을 해 왔기 때문이다. 명절에 일이 있어 못 내려간다고 하고서는 몰래 여행 갔던 적 두어 번, 남자 친구네 집에서 자다가 잠결에 전화 받고서는 내 방인 척하기를 여러 번, 술은 입에도 안 댄다고 손사래 치고서는 필름 끊길 때까지 퍼마신 거야 뭐, 손가락 발가락 다 합쳐도 모자랄 정도.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엄마와 나의 거짓말 총량은 엇비슷할 터이다. 이다지도 천방지축인 막내딸을 마냥 이뻐해 주는 엄마를 내가 어찌 미워할 수 있으랴. 낳으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써주신 어머니, 지난날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이제부터라도 어머니 말씀을 받드는 효녀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아무래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어머나, 어쩜 좋아. 딱 걸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