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여파로 나프타 등 석유화학 원료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제약업계가 병원·약국의 의약품 사재기를 막기 위해 공급 관리에 나섰다. 일부 병원과 약국에서 재고를 확보하려고 필요 이상으로 주문을 넣는 등 사재기 움직임이 감지되자 조치에 나선 것이다.
12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최근 해열진통용 주사제 아세트아미노펜 주문이 200개(10박스) 이상 들어오면 영업 부서장 승인을 거쳐 출하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한 단계 낮은 영업지점장이 출하 여부를 결정했는데 기준을 높인 것이다. 기타 수액제도 500개(50박스) 이상 주문 건은 승인을 받도록 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한 달에 수십 개를 쓰던 병원에서 갑자기 500개를 주문하는 것은 사재기가 의심되고, 추후 반품 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기존 공급량을 보고 신규 주문에 대한 출하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약품그룹은 약국 자동 조제기 포장지의 공급량을 제한하기로 했다. 약국별로 최근 3개월 평균 사용량을 기준으로 공급한다. 수액제 공급 업체인 HK이노엔과 JW신약도 사재기가 의심되는 주문은 출하를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주사기나 수액 세트 등 의료 소모품이 유통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동네 병원들은 비싸지 않은 소모품은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사두는데, 최근 소모품을 공급하는 중간 업체들이 갑자기 가격을 올리거나 ‘품절’을 내걸어 구매를 못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투약해야 하는 중증·희귀·만성 질환 환자들 사이에서도 “주사기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는 주사기·주사침·수액제 등 주요 의료 소모품의 수급 현황을 매일 점검하고 있다. 대형병원들에게 재고를 과도하게 쌓지 말라고 요청하고, 사재기나 매점매석 등 불공정 행위가 적발되면 과징금 등 행정처분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대한병원협회도 회원 병원을 대상으로 주사기 등 14개 필수 관리 품목의 사용량과 재고를 매일 점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