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자랜드에 위치한 창고형 약국인 메디킹덤약국에서 고객들이 약을 구매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12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전자랜드 내 메디킹덤약국. 연고와 진통제를 비치한 매대 앞에서 손님들이 카트에 약을 담고 있었다. 800평 규모의 이 약국 안에는 손님 200여 명이 바구니형 카트를 직접 밀고 다니면서 진열된 일반 의약품(의사의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살펴보고 있었다. 보통 일반 약국은 카운터 뒤에 있는 약사가 약을 꺼내주지만, 이곳은 손님들이 50여 항목으로 분류된 의약품 등을 직접 둘러보고 고를 수 있는 ‘창고형 약국’이다. 약사들이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약을 추천하기도 했다.

기자가 한 제약사의 여드름약에 대해 묻자 약사는 “(여기서는) 시중 약국보다 30%는 저렴하다”며 “이 제품과 성분은 비슷한데 가격이 더 싼 것도 추천드릴 수 있다”고 했다. 이 약국은 매일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밤 9시에 닫는데, 약사 10명 안팎이 근무한다. 약국을 찾은 손님들은 “다이소(생활용품 판매점)나 코스트코(창고형 대형 마트)에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미국·일본 등에서 이미 자리 잡은 ‘창고형 약국’이 최근 국내에서도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지난해 6월 경기 성남에 처음 생겼는데, 지난달 말 기준 전국에 30곳 이상으로 늘었다. 올 들어선 서울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2월 이곳 용산을 비롯해 서울 금천구에 600평 규모로 문을 연 데 이어, 이달에는 동대문구에도 1100평 규모의 약국이 개점했다. 이 외에 중랑구·강서구와 중구 명동에도 개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창고형 약국을 놓고 “상비약 구매 문턱을 낮추는 등 소비자의 편의성이 좋아졌다”는 긍정적 평가와 “의약품 오남용이 우려된다”는 부정적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창고형 약국들은 박리다매 방식의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일반 약국에서 3000~4000원에 판매하는 진통제 ‘페인엔젤’의 경우 창고형 약국에서 2000원에 판매 중이다. 일반 약국보다 30~50%가량 저렴한 셈이다. 감기약인 ‘화이투벤’은 창고형 약국에선 2000원인데, 일반 약국에선 3000원 안팎이다. 시중 약국에서 7000원에 판매하는 박카스 1박스(10병)는 5700원으로 20% 정도 저렴하다. 종합 비타민 영양제인 아로나민골드(120정)는 일반 약국보다 10%가량 싼 5만원에 판매 중이다.

가격보다 ‘구매 편리성’에 높은 점수를 주는 이도 있다. 창고형 약국은 대형 마트처럼 고객이 직접 카트를 끌고 매장을 돌아다니며 약을 비교해 고를 수 있는 구조다. 메디킹덤약국에서 만난 이재영(32)씨는 “주변에서 추천해줘 처음 왔는데, 집 주변 약국보다 7000원에서 1만원 정도 저렴해서 놀랐다”며 “보통 약국 가면 권하는 걸 사게 되는데, 여기선 다양한 제품을 직접 비교해 보고 내가 원하는 가격의 제품으로 선택할 수 있어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반면 매장이 크고 손님이 몰리다 보니 약사들의 복약 지도가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약을 사면 하루에 최대 복용량(횟수) 등을 약사가 알려줘야 하는데, 마트처럼 계산에 급급하다 보니 이런 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의약품은 전문가의 복약 지도가 필요하지만, 창고형 약국은 ‘쇼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자칫 필요하지도 않은 약을 과도하게 구매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청소년층을 위주로 환각 효과를 노리고 감기약이나 수면 유도제 등을 무분별하게 구매해 한 번에 복용하는 행태가 확산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실제로 대한약사회는 지난해 말 “불법 마약 제조에 쓰일 수 있는 ‘슈도에페드린’ 성분의 의약품이 일부 창고형 약국에서 대량으로 팔리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슈도에페드린은 감기약 등에 들어가는 코막힘 완화 성분인데,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제조에 악용될 수 있어 식약처 지침에 따라 1인당 최대 4일분까지만 판매할 수 있다. 이를 아예 판매하지 않는 창고형 약국도 있지만, 일부 창고형 약국에서는 제한 없이 판매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 약사회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