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1시쯤 환자복 차림의 이준우(64)씨가 휠체어를 타고 자신이 있던 제주의료원 부속 요양 병원 2층 병실을 나섰다. 1층으로 내려온 이씨가 복도를 따라 100m쯤 이동하자, 바로 제주의료원 진료실로 이어졌다. 이씨는 지난해 7월 낙상 사고로 인한 사지마비로 요양 병원(192병상)에 입원한 상태인데, 이날 내과 진료를 받기 위해 제주의료원을 찾은 것이다. 요양 병원과 제주의료원이 같은 건물에 있기 때문에 이동 시간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또 이 건물의 30m 앞에는 2층짜리 제주도립 노인 요양원도 있다. 이씨는 “보통 다른 곳에선 요양 병원에 있다가 일반 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하루가 다 가는데 여긴 제주의료원과 붙어 있어서 편하다”고 했다.
이처럼 응급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과 간병(의료 돌봄)을 하는 요양 병원, 요양(생활 돌봄)을 하는 요양원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을 ‘의료·요양 복합체’라고 부른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명예교수는 “의료·요양 복합체는 전반적으로 환자의 편의성과 간병의 질을 높인다”며 “다만 상당한 재정이 소요되기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요양 시설이 한곳에 집결하면 응급 환자 발생 시 신속 대처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요양원에는 상주 의사가 없기 때문에 입소한 노인이 급성 폐렴 등에 걸렸을 때 병원 응급실로 이동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수용 가능한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응급실 뺑뺑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제주도립 요양원 입소자는 내과·신경과 등 8개과 의사 10명이 있는 바로 옆 제주의료원에 늦어도 10분 내 갈 수 있다.
의료·요양 복합체를 만들면 결집한 의료 인력·시설을 치료 병원뿐 아니라 요양 병원과 요양원 환자들이 함께 쓸 수 있는 만큼 간병과 요양의 질도 올라간다. 박현희 제주의료원 간호부장은 “도립 요양원 입소자 100명 가운데 각종 검사를 받기 위해 의료원을 찾는 노인이 하루 평균 5명”이라며 “의료원으로 입원하는 요양원 노인도 한 달에 3명가량 된다”고 했다. 부속 요양 병원에도 의사 5명이 있지만 수시로 의료원 의사와 함께 환자를 협진한다. 요양 병원과 요양원에서 항생제 내성균(VRE·CRE) 감염자가 나오면 곧바로 의료원 격리실로 옮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 인력과 장비의 집중화로 중환자 수용 여력 역시 더 커진다”고 했다. 실제 제주의료원 부속 요양 병원의 중환자 입원 비율은 53%다. 이는 전국 공립 요양 병원 76곳 중 가장 높은 것이다. 지난해 발표된 정부의 요양 병원 적정성 평가(1~5등급)에서도 가장 높은 1등급을 받았다.
제주의료원에 입원하면 병원 측이 환자 상태에 따라 부속 요양 병원이나 도립 요양원 등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보호자가 따로 요양 병원 등을 알아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치매 환자인 신모(76)씨는 제주 의료원에 입원했다가 병원 측의 연결로 지난해 말 부속 요양 병원의 치매 병동 5인실로 들어간 경우다. 다만 부속 요양 병원은 원칙적으로 6개월까지만 입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신씨는 조만간 퇴원해야 한다. 그는 “도의 지원을 받는 병원이라 시설도 좋고, 인력도 많다”며 “더 있고 싶은데 아쉽다”고 했다. 입소 제한 기간이 없는 도립 요양원에 들어가려면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보통 일반 요양 병원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간호사보다 인건비가 덜 드는 간호조무사를 많이 쓴다. 하지만 이곳은 간호사(47명)가 간호조무사(5명)보다 10배 가까이 많다. 또 간병인 1명이 5~6인실 환자를 종일 맡는 게 아니라, 2명이 격일제로 일하며 5인실 환자를 돌본다. 근무 다음 날 쉴 수 있기 때문에 간병인이 야간에도 2~3시간마다 환자 체위를 변경하고 기저귀를 교체해준다. 이곳은 월 1인당 간병비만 108만원으로 수도권(60만원 안팎)에 비해 80%가량 비싸지만, ‘공립 의료·요양 복합체’의 여러 장점 때문에 환자가 몰리고 있다.
전국 1200여 요양 병원 가운데 이곳처럼 실질적 복합체 시설을 갖춘 곳은 5곳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입장에선 한계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상훈 제주의료원장은 “간병·요양 이미지가 강해지면 건강검진 센터와 같은 시설을 확장해도 일반 외래 환자들이 잘 오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일반 환자가 많이 와야 병원 수익이 올라가는데, 정부 지원이 많지 않은 간병·요양 환자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적자를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연간 도(道)에서 20억~25억원의 운영비 지원을 받지만, 제주의료원과 부속 요양 병원은 매년 총 50억원 정도의 적자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