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남성이 과도로 복부를 찌르는 자해를 했는데, 내장 적출(장기가 외부로 노출)이 의심됩니다.”
10일 오후 4시 46분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119구급대로부터 이 같은 ‘닥터헬기’ 출동 요청이 접수됐다. ‘날아다니는 응급실’로 불리는 닥터헬기는 전문의가 탑승해 환자를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해준다. 기자와 함께 출발한 헬기가 약 70~80㎞ 떨어진 경기 이천에 있던 응급 환자를 태운 건 33분 뒤인 오후 5시 19분. 환자의 복부에는 10㎝가량의 자상이 5곳이나 있었다. 의료진은 먼저 환자의 상처를 소독하고 산소 호흡기를 연결했다. ‘흔들리는 헬기 안에서 혈관을 찾아 주삿바늘을 꽂는 게 어렵지 않을까’ 걱정도 잠시 했지만, 기우였다. 지상에서처럼 단번에 성공해 수액을 연결했다. 이어 혈압과 맥박을 실시간 체크하면서 이 환자를 기다리고 있는 병원의 다른 의료팀에 정보를 전달했다. 그로부터 20분 뒤인 오후 5시 39분 헬기는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도착했다. 헬기 출동 요청 때부터 1시간도 채 안 돼 환자를 병원까지 이송해 온 것이다. 곧바로 전문의 3명을 포함한 의료진 10명이 X레이 검사와 처치를 실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출혈 확인을 위해 CT 촬영실로 환자를 옮겼다. 이 역시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내에서 2011년 운항을 시작한 ‘닥터헬기’가 올해로 15년을 맞았다. 그동안 인천(가천대길병원), 전남(목포한국병원), 강원(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경북(안동병원), 충남(단국대병원), 전북(원광대병원), 경기(아주대병원), 제주(제주한라병원) 등 전국에 총 8대가 도입돼 운영 중이다. 도입 첫해(2011년) 환자 76명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누적 기준 총 1만6075명을 이송했다. 이송 환자의 99%가 중증 외상 환자에 속한다.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은 날을 빼고는, 하루에도 수차례 헬기가 출동하고 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의 ‘닥터헬기’의 경우, 24시간 출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닥터헬기가 도입된 이후 ‘예방 가능 외상 사망률(사망한 외상 환자 중 제대로 치료를 받았으면 생존했을 비율)’이 줄어들었다. 닥터헬기 도입 이전만 해도 35%를 웃돌았으나, 2015년 30.5%를 거쳐 계속 감소세를 보이다 2023년에 9.1%로까지 내려갔다.
헬기를 이용해 응급 외상 환자를 최단 시간 내 병원으로 데려올 뿐 아니라, 닥터헬기 운영 병원들이 권역외상중증센터 또는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사실상 ‘배후 진료’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이송되면 즉각 처치와 수술 등 치료를 하고,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겨 관찰한다. 상태가 호전되면 센터 내 일반 병동으로 다시 옮겨서 남은 치료를 이어가는 구조다. 예컨대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외상외과 외에도 흉부외과, 정형외과, 응급의학과 등 전문의 20여 명이 교대로 당직을 서고 있다. 그 결과, 아주대병원의 예방 가능 외상 사망률은 3.3%(지난해 기준)다.
정경원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장은 “외상환자는 환자 발생부터 1시간 이내에 처치, 수술을 하는 ‘골든 아워’를 사수하는 게 핵심”이라며 “닥터헬기는 환자가 의사를 만나기까지의 시간을 크게 줄여줄 뿐 아니라 배후 진료로 즉각 연결해주는 기능을 통해 중증 외상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올해 ‘하늘 위 응급실’ 닥터헬기 1대를 추가로 도입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