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경북 예천 경도요양병원 재활 치료실에서 물리 치료사들이 환자의 다리 근육을 풀어주는 모습./신현종 기자

“혼자 할 거야!”

지난 16일 오후 경북 예천의 경도요양병원. 파킨슨병과 치매 등을 앓고 있는 김덕현(73)씨가 간병인 도움을 뿌리치고 휠체어를 몰아 병실 안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는 변기 양옆의 안전 손잡이를 잡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용변을 본 뒤 문을 열고 나왔다. 김씨는 제주도 토박이다. 딸의 권유로 2년 전 이 병원으로 처음 왔다. 당시 그는 말을 거의 못 하고 기저귀를 찬 채 누워 있던 와상 환자(몸이 불편해 장기간 침대에서 생활하는 환자)였다. 하지만 입원 4개월 만에 재활과 배변 훈련으로 기저귀를 뗐다. 김씨는 “기저귀를 차면 인생이 끝난 것처럼 비참하다. 벗으니 너무 좋다”고 했다.

경도요양병원은 2013년부터 노인 환자의 인간다움을 존중한다는 존엄 케어를 실행하고 있다. 존엄 케어의 핵심은 바로 ‘4무(無) 2탈(脫)’ 간병. 여기서 4무는 냄새·낙상·와상·욕창을 최대한 없애겠다는 뜻이고, 2탈은 환자가 기저귀·억제대(묶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의미다. 요양 병원이 발달한 일본에서 생긴 간병 원칙이다.

◇‘존엄’ 위해 치아부터 배변까지 관리… 간병비 올려도 병실 꽉 찼다

국내에서 4무 2탈 간병을 도입한 곳은 경도요양병원을 비롯해 희연요양병원, 이손요양병원 등 5곳 안팎이다. 전체 요양 병원의 0.4%에 불과하다. 비용이 많이 들고, 정부 지원은 없기 때문이다.

이 병원만 해도 악취 제거를 위해 치위생사를 별도로 고용했다. 노인 환자의 구강을 정기 관리해 구취를 줄여주기 위해서다. 낙상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야간에는 근무할 간병인을 더 뽑아 교대 근무를 시키고 있다. 김씨와 같은 와상 환자들이 중단 없이 재활 훈련을 할 수 있게 휴일에도 직원들을 출근시켜 재활실을 연다. 낙상 사고가 잦은 치매 병동은 침상이 없는 온돌 병실로 바꿨다. 이처럼 곳곳에 비용이 들어갔다.

이 병원의 병실 앞엔 ‘탈 기저귀 현황판’이 붙어 있다. 환자 이름 옆에 ‘시작’ ‘진행 중’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현황판 맨 밑엔 ‘탈 기저귀 성공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윤환 경도요양병원 이사장은 “화장실 배변 훈련으로 기저귀를 떼는 환자 비율은 20~30% 정도”라며 “하지만 배변 시간을 전후해 간병인이 환자를 화장실 밖에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기저귀를 항시 채울 때보다 시간이 몇 배 더 든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이 병원(414병상)에는 소개 업체를 통해 들어온 간병인 100명이 일한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병원에 비해 인력이 30명 정도 더 많다. 4무 2탈 간병은 환자에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이 병원도 존엄 케어 시행 후 2년간 매달 8000만원가량의 인건비 적자가 났다고 한다. 결국 경도요양병원은 4무 2탈을 유지하기 위해 시행 2년 뒤부터 모든 환자의 간병비를 40만원에서 60만원으로 올렸다. 일부 환자는 “간병비가 싼 곳으로 가겠다”며 병원을 떠났다. 이 빈자리를 메운 건 소문을 듣고 온 ‘외지 환자’였다. 경도요양병원은 경북 외 서울·전남·제주 등지에서 온 환자가 20%를 넘는다. 그 결과 보통 요양 병원의 병상 가동률(사용 중인 병상 비율)이 80% 정도인 데 반해, 이 병원의 평균 병상 가동률은 95% 이상이다. 병상을 꽉 채운 환자들이 현실화된 간병비를 내자 2년 만에 적자 없는 존엄 케어가 가능해졌다.

호전되는 환자도 나오고 있다. 이 병원 이윤환 이사장은 “뇌출혈로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입원한 할머니가 2주 만에 깨어나 스스로 식사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한 적도 있다”고 했다. 심한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으로 정신 병원에도 있었던 40대 가장 강모씨는 경도요양병원 입원(2021년 말) 3개월 뒤 기저귀를 떼고 혼자 걷게 됐다. 그는 2023년 초 퇴원한 이후, 이 병원의 환경 관리원으로 취업하기도 했다.

이 병원은 간병인에게 공을 들인다. 간병인이 더 많은 품을 들여야 4무 2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병원의 간병인은 기본적으로 하루 일하고 그다음 날 쉬는 격일제 근무를 한다. 야간에는 교대로 불침번을 서며 병실을 챙긴다. 한 달에 보름 일하고 200만원의 보수를 받는다. 일당(약 13만원)이 시세보다 3만원 정도 높고, 시간적 여유도 있는 편이라 장기 근속 간병인이 많다고 한다. 매년 한 번씩 장기 근속 수당도 지급한다.

이 병원 부근에 있는 같은 재단 소속의 복주회복병원(재활 병원)은 외지 환자 비율이 절반을 넘어간다. 이 병원은 존엄 케어를 시행하면서도 보통의 병원이 기피하는 중환자를 많이 수용하기 때문에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곳의 중환자 비율은 70~80% 선이다. 또 간호사가 환자 간병까지 맡아주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시행해 간병비 부담도 없다. 특히 이 서비스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만큼 취약 계층(의료 급여 수급자)도 매달 식대(약 8만원)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서울에 살던 장훈(60)씨는 뇌출혈로 쓰러진 뒤 지난해 12월 이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당시 콧줄을 달고 말도 하지 못했다. 서울에선 재활 병원들이 “최소 2~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장씨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으로 오게 된 그는 “입원 두 달 만에 말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걷기 재활을 받고 있다”며 “만약 내가 서울에서 2~3개월 대기를 했다면 (재활) 시기를 놓쳐 병상에서 못 일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남상요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노인학과)는 “내년부터 정부의 간병비 지원이 시작되는 만큼 요양 병원들도 간병의 질을 올려야 할 시점”이라며 “환자 중심의 4무 2탈은 한국 요양 병원이 지향해야 할 양질 간병의 본보기 중 하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