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사는 A(51)씨는 지난달 아버지(78)를 모시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아버지와 만나는데, 최근 부쩍 한숨이 늘어난 것은 물론 “살기 싫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하는 게 심상치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니나다를까 병원에서 받은 아버지의 진단명은 ‘우울증’. 그런데 의사는 우울증 치료와 함께 이비인후과 진료를 권유했다. 우울증의 원인이 난청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는 “귀가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자연적 ‘노화(老化) 현상’이라고만 여겼는데, 우울증뿐 아니라 자칫 치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하더라”며 “좀 더 일찍 아버지 난청 치료를 해드릴 걸 후회가 됐다”고 말했다.
국내 노년층 난청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난청은 귀 안쪽에 위치한 달팽이관의 청각 세포와 신경이 약해지면서 소리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증상을 가리킨다. 20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전체 난청 환자는 82만3000명(2024년 기준)으로, 4년 전(64만6000명) 대비 약 27% 늘어났다. 특히 이 중에서도 60대 이상 난청 환자는 2020년 33만7000명에서 2024년 45만6000명으로 약 35.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국내 60대 이상 인구가 28.2% 늘어난 것과 감안하면 난청 증가 속도가 훨씬 빨랐다.
문제는 노인 난청이 우울증이나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지원 고려대 안암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중등도 난청 환자는 치매 발병률이 3배, 고도 난청 환자는 5배까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난청으로 뇌가 소리 자극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인지 기능이 저하되고 치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과 소통이 잘 안 되니 우울증이 오기 쉽고, 심하면 치매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노년층 난청 속도가 빨라지게 된 원인으로 만성 질환의 증가 등을 꼽는다. 특히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등 혈류와 관련 있는 만성 질환이 난청을 부추길 수 있다고 한다. 서재현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대한이과학회 학술이사)는 “달팽이관의 청각 세포에도 혈액 공급이 돼야 하는데, 심혈관 질환이나 대사 질환이 생기면 여기에 영향을 받는다”며 “나이가 늘면 만성 질환이 생기니 난청의 위험이 더 높아진다”고 했다. 이와 함께 최근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OTT를 시청할 때 이어폰을 사용하는 노년층이 늘어난 것도 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노년층이 젊은 시절 전쟁과 산업화를 겪으면서 소음에 많이 노출됐던 점 역시 영향을 줬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정진세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군 생활을 했거나 건설 현장 등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노화 과정을 거치며 난청이 더 심하고 빨리 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남성들의 노년 난청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어르신들 입장에선 난청을 최대한 천천히 약하게 오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한 번 손상된 청각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진세 교수는 “이어폰을 들을 때 최대 음량의 60%로만, 60분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게 세계보건기구(WHO)나 학계의 권고 사항”이라며 “시끄러운 환경을 갈 때는 귀보호를 하는 습관을 들이고, 수면이나 수분 보충 등 일상적인 관리도 난청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