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1일 낮 12시 17분 서울아산병원 수술실. 1분 간격으로 세 번의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한솔(38)·민덕기(36)씨 부부의 세 쌍둥이인 세은·세아·세희(현재 3살) 자매가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태어난 것이다. 임신 28주 4일 만에 이른둥이로 태어난 세 자매의 당시 몸무게는 각각 1㎏ 남짓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곧장 신생아중환자실(NICU)로 옮겨져 집중 치료를 받았다. 첫 면회 날을 잊지 못한다는 엄마 김씨는 “내가 상상한 아기들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첫 한 달가량은 아이들이 안대를 쓰고 산소 공급 보조장치 등에 가려져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세 아이를 모두 집으로 데려올 수 있을 때까지 2개월 반이 걸렸다. 세은이가 51일, 세아가 56일, 세희가 74일 만에 귀가했다. 김씨는 “가족이 처음으로 ‘완전체’가 됐을 때의 벅찬 기분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세상 그 누구보다 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아빠 민씨는 “세 아이가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그간의 고생이 다 씻겨나가는 것 같았고, 아이들을 위해 잘 살아야겠다는 책임감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2018년 결혼한 두 사람에게 세 쌍둥이는 당초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민씨는 딸 둘 이상을 원한 반면, 김씨는 ‘생기면 낳고 안 생기면 말자’는 생각이었다. 결국 시험관 시술로 아기를 갖게 됐다. 처음엔 쌍둥이인 줄만 알았는데, 한 주 뒤 아기집이 하나 더 발견됐다. 배아를 2개 이식했는데 그중 하나가 분열해 ‘일란성+이란성’ 세 쌍둥이가 된 것이다. 병원에선 산모의 안전을 위해 태아 하나를 줄이자(선택적 유산)고 권유했다. 남편 역시 아내를 위해 이 권유를 받아들이자고 했지만, 김씨가 이를 끝까지 버텨냈다.
세 쌍둥이 육아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이른둥이다 보니 신생아 기간도 다른 아이들보다 길었다. 한 달에 기저귀만 1000개를 썼고, 손수건도 하루 100장 이상 사용했다. 아이들이 용쓰기가 심해 분유를 코와 입으로 뿜어내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손수건에 물을 묻혀 목욕도 시켰다.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이들의 분유 종류도 제각각이었다. 특히 세아는 선천성 대사 수치 이상이 나타나 콩으로 만든 특수 분유를 먹어야 했다.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냉장고에 메모를 붙여놓고 한 사람이 전담해 분유를 제조했다. 김씨는 “몸이 부서질 것 같아 수액을 맞으면서도 아이들 곁을 지켰다”고 했다.
병원 출입도 잦았다. 한 달에 20번이나 서울아산병원을 드나들었을 정도다. 세 아이 모두 소아청소년과, 안과, 재활의학과 진료를 기본으로 받았다. 세아와 세희는 뇌 신경 조직 일부가 손상돼 다리 근육 조절이 어려운 백질연화증으로 인한 발목 강직 증상이 있어 생후 100일 무렵부터 현재까지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남편 덕분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청과회사 경매사인 남편은 주로 오후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며, 오전에는 아이들과 함께 병원을 찾는다.
병원 진료가 잦다보니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았다. 이때 국가에서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이른둥이 산정특례’ 제도가 큰 도움이 됐다. 다만 부부는 “산정특례 혜택이 최대 5년 4개월까지만 적용된다고 하니 그 이후의 치료비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벌써 걱정이 앞선다”며 “아이의 발달 상태에 맞춰 유연하게 기간을 연장하거나 다태아 전용 보험 상품 같은 실질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자녀 가구 전기요금 30% 감면 혜택 역시 실제로는 월 1만6000원 한도에 묶여 있어 세 아이를 키우며 세탁기와 건조기를 수시로 돌리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보여주기식 복지’라고 지적했다.
부부는 36개월까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보육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일을 했던 김씨는 임신 기간부터 가정보육 계획을 짰다. 김씨는 “남들은 힘들지 않냐고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매일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라고 했다. 민씨는 주말마다 ‘보조 교사’를 맡았다.
아이들의 가장 친한 친구는 외할아버지 김우천(67)씨와 외할머니 신유정(63)씨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방문해 육아를 돕는다. 외할아버지는 “딸이 세 아이를 품고 고생할 때부터 그저 무사하기만을 바랐는데, 이제는 제법 커서 내 손을 잡고 공주 놀이를 하자고 조르는 손녀들을 보면 그간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행복하다”고 했다.
아이는 행복이다. 아빠 민씨는 “최근에 셋이 쪼르르 서서 ‘아빠 힘내세요’ 노래를 불러줬는데,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김씨 역시 “셋이 옹기종기 모여 장난치고 까르르 웃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고 했다.
이른둥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아기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씩씩해요. 집으로 돌아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 저마다의 속도로 멋지게 자란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느껴지더라도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조금만 더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