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엄마 곁을 지킬 때, 친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제가 어머니 간병 때문에 수강 신청한 수업에서 빠지게 되면 그 자리에 자기를 넣어 달라는 부탁이었어요. 그때 ‘나는 친구들과 가는 길이 다르구나’ 느꼈고, 자퇴를 하게 된 것 같아요.”
대학생 임모씨가 지난 2023년 정부의 ‘가족 돌봄 청년 실태 조사’ 때 증언한 내용이다. 임씨처럼 중증 질환 등을 앓는 부모·조부모의 간병과 생계를 책임지는 아동·청소년을 ‘영 케어러(young carer)’ 혹은 ‘가족 돌봄 청년’이라고 부른다. 정부는 국내에 약 10만명의 영 케어러가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일부 연구에선 60만명에 달할 것이란 추산도 있다.
영 케어러는 더 큰 ‘간병 대가’를 치러야 한다. 또래 친구들은 한창 공부하거나 취업해 일할 시기에 영 케어러들은 부모를 간병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업과 취업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과 직업은 대표적인 계층 이동 사다리 역할을 한다. 이 시기를 놓친 영 케어러들은 취약 계층으로 전락해 장기간의 ‘간병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2023년 정부 실태 조사에서 영 케어러는 부모나 조부모 간병에만 월평균 62만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평균 간병 기간은 46.1개월로 거의 4년이었다. 4년 가까이 다른 일은 뒤로하고 생활비를 벌고 간병에 매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영 케어러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건은 2021년 발생한 ‘대구 간병 살인’ 사건이다. 20대 아들은 뇌출혈로 쓰러진 50대 아버지의 입원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부친을 집으로 데려왔다. 아버지를 혼자 돌보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방치해 숨지게 했다. 영 케어러가 겪는 우울감은 일반인보다 7배 높은 수준으로 조사됐다.
영 케어러들은 2023년 정부 실태 조사에서 필요한 복지 서비스(복수 응답)로 ‘생계 지원(75.6%)’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다음으론 ‘의료 지원’(74%) ‘휴식 지원’(71.4%)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