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에 사는 이모(34)씨의 아버지는 2021년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다. 이후 그의 아버지는 대학 병원과 재활 병원에서 6개월간 입원해 있었다. 매달 개인 간병비로만 400만원을 썼다. 아버지는 재활 후 기본적인 일상 대화는 가능할 만큼 상태가 나아졌다. 문제는 섬망(의식 혼란) 증세였다. 밤에 자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입원 6개월간 개인 간병인이 7번 바뀌었다. 하루 만에 짐을 싼 간병인도 있었다. 이후 요양 병원 6인실로 옮겼지만 두 달 뒤 “다른 환자들이 힘들어하니 퇴원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 1~2개월 간격으로 병원을 옮기다 지쳐 결국 2022년 아버지를 집으로 모셨다. 큰딸인 이씨가 퇴사해 아버지를 간병 중이다. 여동생이 벌어오는 월급으로 산다. 이씨는 “허리, 손목 통증과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고 동생도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라고 했다.
이씨 가족처럼 제대로 된 간병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시설을 찾아 헤매는 환자를 요양 병원계에선 ‘간병 난민’이라 부른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현재 간병을 받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100만명 이상의 노인 중 10~20%는 ‘간병 난민’일 것이라고 업계는 추정했다. 간병 난민이란 말은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일본의 ‘개호(介護·돌봄) 난민’이란 용어를 차용한 것이다. 간병 난민 중엔 섬망이나 배회 등의 증세를 보이는 치매·뇌졸중 환자나 세밀한 간병이 필요한 루게릭병, 근육병 환자가 많다.
◇“뇌졸중·근육병 환자 손 많이 가" 외면… 두달 간 병원 3곳 떠돌았다
의료계에선 치매 환자 수를 근거로 국내 간병 난민이 ‘100만명 간병 노인’ 중 10~20%를 차지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대한치매학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105만명이다. 보통 치매 환자 중 배회 증세가 나타나는 사람은 20% 이상이다. 이 증상은 간병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요양 병원장은 “한밤에 병원 밖으로 나가려는 치매 환자가 있으면 이를 말리는 간병인은 물론 다른 환자들도 잠을 잘 못 자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결국 이런 치매 환자는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병원을 떠돌아다닐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간병 난민’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국가 지원 없이 환자나 보호자가 간병비를 100% 부담하는 ‘사적 간병 구조’ 때문이다. 모든 환자는 본인만 전담하는 개인 간병인을 원한다. 하지만 매달 400만원이 넘는 간병비를 몇 년 동안 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결국 환자 대부분은 간병비가 더 싼 요양 병원의 공동 병실로 간다. 특히 수도권 요양 병원은 저렴한 간병비를 원하는 수요에 맞춰 중국 동포 간병인 1명이 환자 6명을 24시간 보는 ‘1대 6 공동 간병’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수도권의 한 요양 병원장은 “1대6 간병은 공동 생활에 방해되거나 손이 많이 가는 환자는 수용하기 어렵다”며 “환자는 쫓겨나거나 제 발로 나와 ‘더 좋은 요양 병원’을 찾아다니게 된다”고 했다.
경기 안산에 사는 조모(49)씨가 이런 경우다. 그는 대학 병원 퇴원 후 두 달도 안 돼 아버지의 요양 병원을 두 번 바꿨다. 그의 부친은 작년 8월 호흡이 힘들어 병원을 찾았다가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10월 말까지 3개월간 대학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 기간 개인 간병비로만 1400만원을 썼다. 그는 퇴원 후 부친을 요양 병원 6인실로 옮겼지만 3주 만에 병원을 옮겼다. 몸이 굳는 루게릭병과 근육병 환자는 자주 체위를 바꿔주고, 가래를 빼줘야 하는데 야간에 이것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조씨는 “면회를 가면 아버지가 ‘몸이 아프다’ ‘간병인이 바빠서 불러도 잘 안 온다’고 해서 병원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며 “다른 병원을 물색하고 상담을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고 했다. 그는 최근 간호조무사 일을 그만두고 거의 매일 부친을 찾아가 돌보고 있다.
양구현 강릉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 있으면 면역력이 떨어져 항생제 내성균(VRE·CRE)에 감염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지방의 일부 재활·요양 병원은 이런 환자를 잘 받지 않아, 가족들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괴로워하는 걸 꽤 봤다”고 했다. 지방의 영세한 병원들은 감염자를 위한 격리 병실이 없는 경우도 많아 간병 난민이 더 양산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간병인에 대한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도 간병 난민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모(46)씨는 당뇨 등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이달 초 다른 요양 병원으로 옮겼다. 그는 “중국 동포인 간병인이 어머니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며 “체위 변경도 주기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 한국 간병인이 더 많은 병원으로 옮겼다”고 했다.
간병인은 급성기 환자를 돌보는데도 국가 자격증이 없다. 아무나 할 수 있고 사전 교육도 없다. 한국어가 서툰 해외 동포 간병인도 있다. 경기도의 한 요양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김모(67)씨는 “현장에서 다른 간병인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배웠을 뿐, 따로 교육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요양원 등에서 안정기 환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다르다. 이들은 현장 실습 등 320시간의 사전 교육을 이수해야 요양보호사 국가 자격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또 간병인은 병원에 고용된 사람이 아니어서 병원의 통제 범위 밖에 있다. 간병인은 중개 업체를 통해 환자, 가족과 직접 계약을 하고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부산의 한 요양 병원장은 “간병인이 의료진 지시를 듣지 않고 자의로 일하면 간병의 질은 떨어지고 환자 학대 같은 사고가 터진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부 요양 병원은 간병인을 직고용하고 있지만, 이 경우 최저 임금, 법정 근로 시간 등을 보장해야 해 병원이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