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하선규(60)씨의 노모는 10년 전 만성 백혈병으로, 4년 전엔 뇌경색으로 대학 병원에 입원했다. 3년 남짓한 입원 기간에 개인 간병비만 1억원이 넘게 들었다. 치매까지 오자 하씨는 노모를 요양 병원으로 모셨다. 지금도 매달 간병비 포함 130만~150만원의 병원비를 내고 있다. 하씨는 “저축해 놓은 돈도 바닥나서 아파트 등을 담보로 2억원을 빌려 간병비를 감당하고 있다”며 “빚만 쌓여 걱정”이라고 했다.
간병은 치료받는 급성기 환자를 병원과 가정에서 돌보는 ‘의료 돌봄’이다. 안정기 환자의 식사·외출을 돕는 ‘생활 돌봄’인 요양과는 다르다. 요양은 국가 지원을 받는다. 2008년 도입된 장기요양보험은 말벗, 목욕 등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여러 요양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 환자 생존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간병은 제도권 밖에 있다. 관련법도 없고, 건강보험 적용도 안 된다. 모든 간병 부담을 환자와 그 가족이 100% 진다.
국가 차원의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간병 노인이 이미 100만명을 훌쩍 넘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대현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작년 발표한 논문에서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약 15%인 140만명이 심각한 이동 장애 등으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홈바운드(homebound) 노인’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 중 상당수가 집에서 간병을 받는 노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2024년 기준, 요양 병원의 연간 입원 환자 수는 35만명이다. 여기에 집에서 가족 간병을 받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인 수 71만명(이용주 동덕여대 교수 등 연구)을 합치면 100만명이 넘는다. 80세 이상 노인(약 230만명)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다. ‘간병 노인 100만명 시대’에 접어든 초고령 사회 한국에서 간병은 더는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되고 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우리나라에서 간병은 국가적 문제”라며 “정부가 적극 개입해 환자와 가족의 간병 부담을 덜어줘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10년 간병에 집 잡히고 빚만 2억”… 60대 아들의 외로운 ‘간병 전쟁’
“한 달 병원비가 200만원인데, (개인) 간병비는 400만원이 넘습니다.”
치매 노모를 둔 하선규씨는 2024년 3월 당시 대통령이 주재한 민생 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2022년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대학 병원에 입원했을 때 겪은 ‘간병비 경험’을 꺼냈다. 그는 “간병비가 지속적으로 나가니 빚도 지게 되고, 형제간 우애도 안 좋아지더라”며 “간병비 (정부 지원을) 꼭 좀 부탁드린다”고 했다. 당시 참석한 보건복지부 장관은 “(간병비)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후 하씨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그는 노래방 두 곳을 운영하며 노모의 간병비를 댔지만, 코로나 이후 사업은 급속히 기울었다. 1년 전부턴 노래방 건물 월세와 관리비도 제대로 못 내고 있다. 그는 “간병비 마련을 위해 대출한 돈만 2억원”이라며 “더 버티다 안 되면 파산·회생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했다.
‘간병 노인 100만명 시대’에 건보 적용이 안 되는 간병비는 공포의 단어가 됐다. 보건의료노조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간병 가족의 96%가 ‘간병비가 너무 비싸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요즘 일상어가 된 ‘간병 파산’이란 말에도 이런 공포감이 배어 있다.
간병인은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와 달리 국가 자격증이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2023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개인 간병인을 썼을 때 드는 월평균 비용은 370만원이다. 같은 해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 월평균 소득(363만원)보다 많다. 월급을 전부 털어도 간병비를 못 댄다는 뜻이다.
이마저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본지가 취재한 다수의 환자 보호자는 “대학 병원에서 24시간 개인 간병인을 구하려면 최소 400만원은 줘야 한다”고 했다. 작년 말 어머니가 대학 병원에 입원했던 정모(55)씨는 “하루 14만원이 기본”이라며 “‘공휴일 가산’ 등을 붙여 한 달에 440만원 정도를 간병비로 썼다”고 했다.
간병비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0년 월평균 개인 간병비는 112만원이었는데, 2023년엔 370만원으로 13년간 230%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약 30%)의 7배 이상이다. 전체 간병비 지출액도 급증해 2022년 이미 10조원을 돌파했다.
결국 환자나 가족은 요양 병원을 찾는다. 요양 병원은 간병인 한 명이 4~6명을 보기 때문에 간병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경기 안성에 사는 박모(62)씨도 간병비 부담 때문에 최근 거동을 못 하는 아버지를 요양 병원의 6인실로 옮겼다. 그의 부친은 2024년 초 머리를 다쳐 수술을 하고, 대학 병원과 재활 병원에서 1년 정도 입원했다. 이 기간 개인 간병비로만 5000만원 넘게 썼다. 요양 병원으로 옮긴 지금도 간병비를 포함해 매달 병원비로 140만원을 낸다. 그는 “적금을 깨서 버텨왔는데 돈이 모자라 지난달 혼자 살고 있는 26평 아파트를 내놨다”고 했다.
요양 병원비도 부담스러워 가족이 집에서 환자를 간병하는 경우도 많다. 정부의 2023년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돌봄 제공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응답 노인 중 가장 많은 81.4%(복수 응답)가 ‘가족’이라고 답했다. ‘개인 (고용) 간병인’이라고 답한 비율은 11%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간병비가 더 오를 것”이라고 했다. 2022년 기준 요양 병원에 입원한 연간 환자 수(37만명)는 요양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3만4929명)보다 10배 많았다.
임선영 서안산노인전문병원 이사장은 “힘들고 어려운 간병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없고, 간병인을 찾는 사람은 갈수록 늘고 있다”며 “현재 간병인 대부분이 65세 이상이다. 빨리 신규 유입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국내 간병을 책임지는 고령 간병인들이 향후 몇 년 내 한꺼번에 빠지기 시작하면 간병비가 급등해 환자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단 얘기다. 전·현 정부는 2022년부터 여러 차례 간병비 부담 완화 방침을 밝히고 올 하반기에 ‘간병비 급여화(건보 적용)’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최근 시행 시기를 내년으로 미뤘다. 정부 관계자는 “간병비 급여화에 필요한 건보 재정 및 간병 인력 규모 등을 더 면밀히 파악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