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헬레루프(Hellerup) 클리닉. 이곳은 반경 5㎞ 내 살고 있는 지역 주민 1600여 명의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주치의 병원이지만, 따로 걸려 있는 간판도 없었다. 외관만 봐선 주택 건물로 착각할 정도였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가벼운 경증 환자들이 굳이 병원까지 오지 않아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원격 화상 진료 시스템이 다 갖춰져 있었다. 이 클리닉의 토마스 아루 원장은 “덴마크 국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주변에 전담 주치의가 지정되기 때문에, 진료나 검진 등이 필요하면 해당 주치의를 찾아가거나 연락하면 된다”며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갈 경우엔 새 지역의 담당 주치의에게 환자 정보가 전송된다”고 말했다.
덴마크는 이처럼 동네 병원에서 근무하는 ‘GP(General Practitioner)’들이 인근 지역 주민의 1차 진료를 맡는 주치의 제도를 지난 1973년부터 도입해 운영 중이다. GP는 한국어로는 ‘일반의’로 번역되지만, 가정의학과 전문의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감기 같은 가벼운 증상의 진료·치료는 물론, 우울증 등 정신 건강 상담까지 맡는다. 당뇨·비만 등을 가진 만성 질환자 관리도 이들 GP의 몫이다. 인구 60만명인 수도 코펜하겐에만 189개 클리닉에서 GP 377명(2024년 말 기준)이 환자들을 관리한다. GP 1명당 환자 약 1600명을 맡는 셈이다. GP 1명이 보통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는 평균 50명(원격 화상진료 포함) 정도라고 한다.
특히 GP는 환자들이 전문의 진료로 가는 ‘관문(게이트키퍼)’ 역할을 맡았다. GP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검사와 병원 방문 횟수를 줄여주는 것이다. 당뇨병 전문 공공병원인 스테노당뇨센터의 프레데리크 페르손 박사(의학 총괄 책임자)는 “GP가 의뢰한 환자를 우리가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안정되면 다시 GP에게 돌려보낸다”며 “이렇게 ‘주치의’와 ‘전문 기관’이 역할을 나눠 환자를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주치의 제도는 고령화 사회와 함께 늘어나는 만성 질환 환자 관리에도 효과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특히 원격 화상 진료 활성화로, 고령 환자들이 직접 클리닉을 찾지 못해도 의사와 자주 상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환자 역시 자신을 계속 담당해 온 주치의에게 일관된 진료를 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65세 이상 인구 중 절반가량이 복합 만성 질환을 앓는 덴마크는 GP 수를 현재 3500여 명에서 2030년까지 5000명으로 더 늘린다는 계획이다. 신규 GP들을 주로 지방에 배치해 만성 질환 관리가 어려운 비(非)도시 지역 내 건강 관리 역량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한국형 주치의’를 국정 과제로 내걸고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선 “의료 환경이 부족한 지역에 중증 만성 질환자가 증가하는 걸 막기 위해 주치의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에 오는 7월부터 광주 북구 등 일부 지역에서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자신이 사는 동네 병원에 ‘주치의’를 지정하고, 주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불해 건강 관리를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내에 도입될 주치의 제도는 덴마크의 GP와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덴마크에선 주치의를 통하지 않고선 환자가 다른 분야 전문의 진료를 받거나 대형 병원에 마음대로 갈 수 없지만,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환자의 병원 선택권’을 제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주치의를 통해 평소 건강 관리를 하면서도,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싶다면 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