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광주 남구 빛고을전남대병원 1층 통합진료센터. 류마티스내과와 정형외과 진료실 앞에는 환자와 보호자 30여 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대학병원’이라는 이름에 비해선 한산했다. 이 병원은 류마티스·퇴행성 관절염을 주로 진료해왔는데, 오는 3월 이런 핵심 진료과들은 전남대병원 본원과 화순전남대병원으로 옮긴다. 이 병원에는 노년내과 등 일부 진료과만 남을 예정이다. 고관절 치료를 위해 전남 영광에서 온 김모(67)씨는 “다음 예약을 잡으려니 ‘화순으로 가시라’고 하더라”면서 “6개월마다 병원에 오는데 다음에는 화순에 가기 위해 1시간은 더 일찍 집에서 나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지역사회에서는 “수백억 원을 들여 지은 병원이 빈 껍데기가 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남대병원 본원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빛고을전남대병원은 2008년 보건복지부 지정 ‘권역별 전문 질환 센터’로 2014년 개원했다. 국비 250억원, 시비 110억원, 전남대병원 자체 예산 297억원 등 총 657억원이 투입됐다. 개원 당시 11개 진료과, 216병상 규모의 ‘병원급’으로 출발했다가, 이후 진료과를 20개까지 늘려 2020년에 종합병원으로 지정됐다. 현재 9개과, 178병상만 남았다. 개원 이후 연평균 14만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이 병원은 개원 직후부터 연간 100억원 안팎의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까지 누적 적자가 1300억원에 달한다. 잘못된 수요 예측과 시 외곽이라는 입지가 실패의 주 원인으로 꼽힌다.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차로 35분이나 떨어져 있고, 대중 교통 편도 많지 않다. 노인 질환을 주로 보는 병원인데 대중 교통이 불편해 노인 환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큰 문제다. 개원 당시 ‘종합병원급’이 아닌 ‘병원급’이었기 때문에 수가(건강보험이 병원에 주는 돈)에서도 손해를 봤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를 만들었는데 환자가 거의 없어 인건비 등 비용 부담만 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4년 2월 ‘의정 사태’가 벌어져 전공의마저 병원을 떠나 적자 폭이 더 커졌다.
결국 전남대병원은 빛고을전남대병원의 전문 질환 센터를 본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작년 11월 보건복지부 승인을 받았다. 이 병원에는 노년내과와 소화기내과 등만 남겨 만성 질환 환자를 관리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또 모의수술실 등을 설치해 전공의 교육 시설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지역 주민들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병원의 핵심 기능을 ‘적자가 난다’며 빼버리는 것은 ‘전문 질환을 진료하는 지역 병원’이라는 설립 취지에 안 맞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병원 측은 ‘기능 이전’이라고 하지만, 환자 입장에선 다니던 병원이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빛고을전남대병원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공공·지역 병원을 설립하거나 확대할 때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승연 전 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공공 병원을 땅값이 싸다는 이유로 외진 데 지어 놓고 ‘장사가 안 된다’고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입지 선정 단계부터 의료 수요 예측을 제대로 해야 하고, 설립 이후에도 공공 병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