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40대 변호사 A씨는 지난해 말 건강검진에서 자신이 ‘고지혈증(고콜레스테롤혈증)’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평소 고혈압 약을 먹고 있는 그는 “의사가 고지혈증 약을 먹지 않으면 고혈압이 더 심해지는 건 물론, 자칫 동맥경화로까지 갈 수 있다고 하더라. 40대에 약을 두 개나 달고 살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조용한 살인자’ 고지혈증이 한국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성인 고지혈증 환자 비율은 23.6%에 달했다. 성인 4명 중 1명이 고지혈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고지혈증은 식습관이나 운동 부족 등의 영향으로 혈액 내 지방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져 혈관 벽에 염증을 일으키는 만성 질환이다. 대부분 별 증상 없이 진행되는데, 계속 방치하면 동맥경화나 심근경색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국내 주요 만성 질환 가운데 고혈압 환자 비율이 가장 많았는데, 2023년부터 고지혈증(20.9%)이 고혈압(20%)을 앞질렀다. 2024년에는 고지혈증(23.6%)과 고혈압(22.2%) 간 성인 환자 비율 격차가 더 벌어졌다. 특히 고지혈증 환자는 2024년 기준 322만1286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으로, 4년 전보다 100만명 가까이 늘었다.
고지혈증 환자가 급증한 것은 서구화된 식습관과 비만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노화와 함께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고지혈증은 식습관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지표가 60대 환자 비율이다. 60대 고지혈증 환자 비율이 50.8%로 처음 절반을 넘겼다. 60대는 2명 중 1명이 고지혈증 환자인 것이다. 그러나 70대 이상에선 환자 비율이 40%대로 떨어진다. 김현창 연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6·25 전쟁 등을 전후해 성장기를 보낸 70대 이상과 산업화를 겪은 60대의 식습관 차이가 고지혈증 비율을 다르게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최근 “고지혈증은 평소 약만 잘 먹으면 악화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도 고지혈증 환자 급증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선제적으로 고지혈증 검사를 받고 미리미리 약을 처방받는 국민이 늘면서 환자 통계 수치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지혈증은 약만 먹으면 치료율이 86.2%(질병관리청 조사)에 달한다.
문제는 고지혈증이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릴 정도로 조용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기적인 건강검진 등으로 병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혈압은 두통, 당뇨병은 입이 마르거나 소변이 많아지는 등 자각 증상이 있지만 고지혈증은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고지혈증이 악화되면서 생길 수 있는 동맥경화는 스스로 느낄 수도 없어 나중에 심근경색이나 뇌졸중과 같은 심각한 상태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상우 동국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동맥경화가 생기면 심장은 피를 더욱 세게 내보내기 위해 고혈압을 유발하고 이로 인해 혈관 파열의 위험도 커지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기적인 고지혈증 검사가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