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김수현·우진규 사무관 가족이 기상청 마스코트인 ‘기상이’ 인형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우 사무관, 지민·지윤·지연양, 김 사무관. /박성원 기자

그날 날씨 걱정은 없었다. 다음 날 비 소식 없이 맑을 것으로 예보됐기 때문이다. 기상청 예보관은 갑작스러운 집중호우라도 내리면 사무실로 복귀해 비상근무를 해야 하기에 몇 번이고 자료를 확인했다. 아내의 진통이 시작된 2008년 5월 26일, 우진규(50) 사무관은 인천 기상대에서 부산까지 밤새 420㎞를 차로 달렸다. 23시간 진통 끝에 첫째 딸이 태어났다. “잠시 아이를 안아보고 병원 밖으로 나와 하늘을 봤어요. 다행히도 맑았어요.”

기상청 우진규·김수현(49) 사무관 부부는 딸 셋을 키우고 있다. 20년 이상 예보 업무를 한 베테랑 부부 예보관이다. 부부는 “첫째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동생을 둘이나 더 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결혼하고도 서로 일터가 너무 멀어서 한 달에 한 번밖에 얼굴을 못 봤기 때문이다.

지방이나 도서 산간 발령이 많은 기상청 업무 특성상 사내 부부라 해도 떨어져 지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 부부도 그랬다. 연애할 때도 우 사무관은 백령도, 김 사무관은 서울에서 일했고, 결혼 후엔 인천과 포항으로 각각 발령받았다. 둘 다 밤샘 당직 근무가 많은 예보관이다 보니 쉬는 날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주말 부부’는 사치고, ‘월간 부부’ 정도 됐다”고 김 사무관은 말했다.

먼 거리는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면서 문제가 됐다. 한 달에 한 번 보는 날이 배란일과 겹치지 않을 때가 많아서였다. 결국 우 사무관이 아내 배란일에 맞춰 업무를 조정하거나 휴가를 내고 230㎞를 달려 포항으로 향했다.

출산 예정일을 몇 주 앞두고 아내인 김 사무관은 친정이 있는 부산에 내려갔다. 긴 진통 끝에 제왕절개로 첫째 지민(18)양을 낳았다. 출산휴가 3개월이 끝나고는 포항과 부산을 오가며 육아를 했다. 김 사무관은 “이때까지만 해도 남편과 지내는 지역의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고, 부모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육아를 할 수 없어 둘째, 셋째를 낳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얼마 후 김 사무관이 인천으로 발령 나면서 부부가 상봉하는 듯했으나, 남편 우 사무관이 파주 문산으로 가면서 ‘반쪽 상봉’이 됐다. 외할머니 손에 크던 첫째가 이제는 친할머니 손에서 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육아 도움을 받기 위해 우 사무관의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으로 부부가 들어가게 됐다. 결혼 후 처음으로 한집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산에서 인천까지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데다 밤샘 업무가 많아서 서로 자주 보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 후 오래 떨어져 살면서 애틋할 대로 애틋해진 부부가 한집 생활을 하자 예정에 없던 둘째가 생기게 됐다. 둘째 지연(17)양이 연년생으로 태어나게 됐다. 졸지에 갓난아기 둘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친할머니만으로는 손이 부족해졌다. 어쩔 수 없이 부산에 있던 외할머니까지 인천으로 올라와 ‘사돈 합동 육아’가 시작됐다. 단독주택 1층에선 친할머니가 첫째를, 2층에선 외할머니가 둘째를 봤다. 그런 생활은 부부가 함께 서울로 발령 나기까지 2년간 계속됐다.

첫째와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며 육아가 수월해졌을 무렵, 양가 부모님이 셋째 낳기를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사무관이 두 아이를 모두 제왕절개로 낳은 터라 장기 유착 가능성이 있어 병원에서 셋째 낳는 것을 만류했고, 이제 육아에 한숨 돌린 부부도 “생각 없다”며 잘라 말했다고 한다.

셋째 생각이 나기 시작한 건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였다. “예쁘게 자란 아이들을 보면서 ‘셋째는 어떤 얼굴일까?’ 하고 아내와 이야기 나누는 날이 많아졌다”고 우 사무관은 말했다. 우 사무관의 부모님이 “셋째는 우리가 책임질 테니 아들이든 딸이든 낳아보라”며 응원해준 것도 셋째 결심에 큰 계기가 됐다. 그렇게 병원에 가 상담을 받게 됐고, 셋째를 낳기에 몸 상태가 괜찮다는 결과를 듣고 지난 2016년 셋째 지윤(10)양이 태어났다. 김 사무관은 “나이 터울이 크다 보니 첫째와 둘째가 막내를 잘 돌봐준 것도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예보관 엄마·아빠를 둔 세 자매의 꿈은 과학자다. 입시생이 된 첫째는 엄마·아빠처럼 대기과학과에 들어가 기상학을 공부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특히 자매들은 아빠가 기상청 대표로 TV에 나와 날씨 해설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우 사무관은 “아내와 딸들과 함께 저녁마다 모여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1~2시간 수다를 떠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며 “딸들이 TV에 나온 모습을 모니터링해 주면서 발음이나 의상을 곧잘 지적해 주기도 한다”고 했다.

부부는 기상청에서 출산 자체를 망설이거나, 둘째나 셋째 낳기를 고민하는 동료들을 자주 상담해 주고 있다. 남편 우 사무관은 “동료가 고민을 털어놓을 때 꼭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좋다는 것”이라고 했다. 아내 김 사무관은 “둘째, 셋째가 태어나는 순간 웃을 일이 더 많아지고 식구끼리도 더 돈독해지는 것 같다”며 “첫째만 있을 때, 둘째까지 있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깊이의 행복이 셋째를 낳은 후 찾아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