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예산 부족으로 병원·약국들이 청구한 의료급여 환자 진료비와 약값 약 2200억원(29일 기준)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와 공단이 예측한 것보다 의료급여 수급자가 더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30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서울, 인천, 경기, 경북, 충남 등 일부 지역에서 의료급여 기금이 부족해 진료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진료비 미지급 사태는 지난달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건보공단은 병원·약국에 보낸 안내문에서 “책정된 예산액 대비 청구된 비용이 일시적으로 증가해 부득이하게 의료급여 비용 지급이 일부 지연되고 있다”면서 “서울, 인천, 경기는 내년 1월 14일 이후, 경북과 충남은 내년 1월 22일 이후 지급 예정”이라고 했다.
‘의료급여’는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해 정부가 의료비 대부분을 대신 내주는 제도다. 올해 11월 기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이재민, 국가유공자, 북한이탈주민 등 163만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올해 지출액은 12조4000억원 정도다. 1종 의료급여자는 병원 입원이 무료이고, 외래 진료를 받을 때는 1000∼2000원만 부담한다. 2종은 입원비의 10%, 외래 진료비의 15%(동네 의원은 1000원)만 내면 된다.
의료급여 재원은 대부분 세금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통 8대2 비율로 부담한다. 정부는 매년 의료수급자를 예측한 뒤 예산을 책정해 건강보험공단에 주고, 건보공단은 병원과 약국에서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와 약값을 청구하면 이를 지급한다.
정부와 공단은 당초 올해 의료급여 수급자가 156만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7만명이나 많아지며 예산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형 산불과 집중호우로 이재민이 많이 발생했고, 의료급여 조건이 완화되면서 수급자 수가 예상보다 크게 늘었다”고 했다.
정부는 자녀의 소득과 재산을 따져 의료수급 여부를 결정하는데, 올해 기준을 크게 낮췄다. 기존엔 아들은 소득의 30%, 딸은 소득의 15%를 신청자인 부모에게 준다고 간주했는데, 올해는 아들·딸 모두 비율을 10%로 낮췄다. 내년부터는 자녀의 소득·재산을 아예 따지지 않을 예정이다.
의료급여 미지급 사태는 2019년까지 거의 매년 벌어졌다. 이후 정부가 예산을 대거 투입해 발생하지 않다가 올해 5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 정부는 내년에 올해 못 준 비용을 줄 예정이지만, 지급이 지연된 데 대한 이자는 안 준다는 방침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08년 ‘의료급여 비용이 10일 이상 지연될 경우 연 5%의 이자를 지급하라’고 복지부에 권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