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구에서 광도한의원을 운영하는 강병령(64) 원장. 그의 몸에는 지난 삶이 그대로 배어 있다. 평생 목발의 압력을 견뎌온 양어깨는 턱 높이까지 솟아 있고, 상체 무게를 홀로 지탱한 척추는 ‘S자’로 휘어 있다. 만성 어깨·허리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웃는 얼굴로 산다.
강 원장은 지난 2022년 “지체·지적 장애인들에게 써달라”며 아내인 강경희(61)씨와 함께 각각 1억원을 기부해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동반 가입했다. 그는 이와 별도로 지난 23년간 매년 1000만~1500만원을 모교인 부산 동래고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총 230명)하고 해외 유명 대학 탐방 기회를 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만 9억원을 넘는다. 강 원장은 29일 본지 인터뷰에서 “힘들 땐 옆에서 조금만 도와줘도 훨씬 쉽게 일어날 수 있다”며 “내가 기부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육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두 살 때 소아마비로 하반신 마비가 왔다. 다섯 살 때까진 누워만 있었다. 반드시 걷겠다는 의지로 재활을 한 끝에 입학할 때쯤엔 목발·보조기의 도움으로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그는 “하체에 근육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공부하려고 의자에만 앉아도 엉덩이와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왔다”며 “사춘기 때는 방바닥에 엎드려 참 많이 울었다”고 했다. 대학 시절도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는 대학 입시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한의대를 지망했으나 “중증 장애인은 수업을 못 따라온다”며 거절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동국대 한의대에 입학했지만, 강의실을 옮겨가며 수업을 듣고 나면 그날 밤 몸살이 났다고 한다. 시간에 맞춰 강의실로 가려다 계단에서 넘어져 구른 적도 있었다. 강 원장은 “그 당시 제 가방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던 친구들이 없었다면 졸업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1987년 한의대 졸업 후엔 그를 불러주는 한의원이 없었다. 이에 이듬해 4000만원을 대출받아 부산 동래구의 한 건물 2층 40평짜리 상가에 한의원을 개원했다. 사정을 들은 상가 주인이 보증금을 시세 절반으로 깎아줬다. 개원 초기에 방 얻을 돈이 없어 한의원에서 숙식했다.
기부를 시작한 건 2002년 모교인 동래고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장학회를 설립해보라”는 권유를 받은 뒤였다. 처음에는 “나중에 여유가 되면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작게라도 지금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교장 선생님의 설득에, 강 원장은 1000만원을 대출받아 동래고 학생 10명에게 첫 장학금을 줬다. 그는 “그때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기부를 하지 않고 있었을 것”이라며 “도움만 받았던 제가 반대로 돌려줘 보니 전보다 많이 웃게 되더라”고 했다. 한의원 역시 기부를 시작한 뒤 ‘관절·허리 통증 잘 보는 곳’으로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강 원장은 10년 전까진 매년 3000만원을 들여 장애인과 취약 계층 학생, 심장병 어린이를 지원했고, 이후 지금까진 매년 5000만~1억원을 기부하고 있다. 두 달 전쯤 기술고시에 합격한 동래고 후배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도 “주변에 작게라도 나눠줘야 한다. 그게 네 인생이 풍성해지는 길”이란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강 원장은 “나눠주고 나면 희한하게 그 이상으로 돈이 들어왔고, 무엇보다 자녀들이 잘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기부·봉사 현장에 함께 나갔던 1남 2녀 자녀 중 두 딸은 미국에서 의사가 됐고, 막내아들은 예일대에서 생명 공학 박사 학위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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