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크림 짜는 것 처음 해보는 데 재밌어요. 초콜릿까지 넣으면 너무 달 것 같아요.”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신관 14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벽에 있는 책꽂이에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하얀 칠판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이곳은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이 운영하는 ‘병원 학교’다. 소아암이나 백혈병 등 치료를 받는 초·중·고 학생 환자를 위한 곳이다. 하루 1시간 수업을들으면 학교에 출석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병원 학교는 서울아산병원을 포함해 전국에 36곳 있는데, 병원들이 시도교육청과 협약을 맺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병원이 전국 최초로 1995년 시범 운영을 거쳐 1999년 정식 운영을 시작해 올해로 도입된 지 30년이 됐다.
이날 서울아산병원 병원 학교에선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머핀(빵) 만들기’가 진행됐다. 올해 공식 수업은 지난 18일 끝났지만, 크리스마스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 수업이 열린 것이다. 수업에 참석한 아이들 4명은 딸기와 포도 등을 컵에 넣고 그 위에 생크림을 올렸다. 대부분 항암 치료나 골수 이식을 받은 아이들이다. 한 아이는 “작년과 올해 모두 크리스마스를 병원에서 보내게 됐다”고 했다.
병원 학교의 가장 큰 목적은 ‘유급 방지’지만, 병원 생활에 지친 아이들에게 큰 활력소가 된다. 작년 9월 희귀 뇌종양 진단을 받은 조모(11)군은 그때부터 학교에 못 가고 세 차례의 골수 이식과 항암 치료를 받으며 입퇴원을 반복했다. 무균실에 머물 때는 스스로를 ‘친구 없는 개똥벌레’라고 부를 만큼 외로움과 우울감에 힘들어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3월 병원 학교에 다니고부터 한층 밝아졌다. 이젠 “엄마, 오늘은 병원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듣고 싶다”고 한다고 한다.
지난해 특발성 무형성 빈혈 진단을 받았던 김모(12)군은 올해 10월부터 병원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김군은 “병원에서 알게 된 다른 친구가 병원학교가 재밌다고 해서 다니기 시작했는데, 병원학교 덕분에 이제는 병원 생활이 지겹지 않다”고 했다.
병원학교의 교무 부장 역할을 맡고 있는 의료사회복지사 장예지씨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병실에서 휴대폰만 보고, 표정이 너무 어둡다’고 말씀하시는 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면서 “병원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밝게 웃게 된 아이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