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는 거예요. 그러려면 후회가 덜 생기게끔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노력해야죠. 그리고 후배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나 여건을 잘 만들어주는 겁니다.”
이향애(79) 서울 성북구의사회 회장(이향애정형외과 원장)은 ‘앞으로 남은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봉사’를 언급했다. 그는 최근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제60회 전국여성대회’에서 50여 년 간 국내·외를 오가며 의료 봉사를 실천해 온 공로로 ‘용신봉사상’을 받았다. 이 상은 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이자 여성 농촌 운동가인 최용신 여사의 뜻을 기려, 희생적 봉사 활동을 펼친 여성에게 주는 상이다.
고려대 의대 출신인 이 회장은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국내 제1호 여성 정형외과 전문의다. 그는 “1970년대 초반 NMC(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인턴을 했는데, 당시 병원에선 ‘닥터 리(이 회장 지칭)는 손도 빠르고 응급 대처 능력이 좋으니 산부인과를 가라’고 했다”며 “그 당시엔 여성이 외과적 소질을 보이면 산부인과로 가라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정형외과를 택했다. 이 회장은 “원래 내가 그림에 관심이 많고 창조적인 작업을 좋아하는데, 사지의 힘줄과 혈관을 꿰매고 재건하는 정형외과가 그림 그리는 과정과 닮아 그렇게 매력적이었다”며 “시험을 쳐서 당당히 (1976년) 정형외과 전문의가 됐다”고 했다. 이후엔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1988년)도 추가로 땄다.
의료 봉사는 의대생이던 1960년대 말부터 시작했지만, 봉사의 매력에 빠진 건 1971년 레지던트 1년 차 때 무(無)의촌 지역 근무가 계기였다고 한다. 당시엔 전문의 시험에 응시하려면 ‘무의촌 6개월 근무’가 법적 의무였다. 이 회장은 “충남 당진 합덕에서 유일한 의사로 6개월간 근무하며, 의료 환경이 열악한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이때부터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었다.
이 회장은 이후 경로당 순회 진료, 쪽방촌 거주민 봉사, 독거 노인 의료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지난 2000년대 말 손수 조직한 고려대의대 의료봉사회를 통해 진행한 공식 봉사 활동만 140회를 넘는다. 북한 개성공단과 금강산 인민병원에서 방문 진료를 보는가 하면,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과 2012년 필리핀 나보타스 태풍 피해 때도 현장 의료 봉사에 나섰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 활동’으로 개성공단 방문 진료를 꼽았다. 그는 “초코파이 하나를 받기 위해 새벽 4시부터 나왔던 북측의 한 여공이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는데, 당시 개성공단 병원에 북측 담당 의료진이 부족해 내가 이 여공의 다리를 치료해줬다”며 “그런데 그 이후로 북측 간부들이 몰려와서 ‘나도 좀 봐주시라요’라고 부탁하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이 회장의 요즘 관심은 중국 동포 외국인 노동자나 북한 이주민, 다문화 가정 같은 사회적 약자라고 한다. 그는 “이제 의료봉사는 돌봄이 필요한 계층을 명확히 찾아내 꾸준한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최근엔 노년층도 건강 관리 방법을 몰라 건강을 악화시키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예방 차원에서 체계적인 건강 관리에 대한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