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소방서 구급대원입니다. 환자 나이 42세,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고 6시부터 가슴이 조이는 듯이 아프다고 신고하셨습니다. 그쪽 병원에 다니신 적은 없습니다. 혈압은 높고…(후략)”
평일 오후 6시 20분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라 앞, 흉통을 호소하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역삼119안전센터 구급대원은 환자를 구급차에 태운 채, 그 안에서 응급센터로 전화를 돌리기에 바빴다. 대학 병원에서는 “지금 환자를 받을 자리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일반 종합병원에서는 “흉통 환자를 진료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결국 여섯 번째 전화에서야 환자를 받아주겠다는 병원을 간신히 찾았다. 환자가 있던 서울 강남구에서 약 20분 넘게 이동해야 하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병원 응급실이었다.
‘응급실 뺑뺑이’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본지는 최근 이틀에 걸쳐 서울 지역에서 119 구급차에 동승해 응급 의료의 실상을 알아봤다. 구급차를 타보니, 응급실 밖에서는 환자를 구급차에 태운 채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전화를 거는 ‘뺑뺑이’가 끊이지 않았다. 기자가 동행한 30시간 동안 구급대원들은 응급 현장에서 전화를 하느라 길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119구급대가 받아주는 병원을 확인하는 전화에 목매는 이유는 병원이 선정되지 않으면 출발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급대원은 응급센터 상황과 최종 치료 의료진 유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 전화 돌리기에 의존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과 의정 갈등 사태를 거치면서 병원들은 미리 전화로 수용 여부가 결정된 환자가 아닌 이상 받아주지 않고 있다.
이처럼 병원들이 구급차에 태운 환자를 받을지 말지 결정하다 보니, 현장에선 환자가 얼마나 중증인지를 파악하는 구급대원의 문진이 길어졌다. 밤 10시쯤 만난 48세 환자는 지인과 식사 후 화장실에 갔다가 갑자기 어지럼증이 생겨 119에 신고해 온 경우였다. 맥주 한 모금을 마셨을 뿐 평소 어지럼을 느낀 적은 없었다는 환자의 말에 구급대원은 환자를 들것에 앉힌 채 온갖 질문을 쏟아냈다. 구급대원은 “뇌졸중 같은 질환이면 매우 급박한 환자이기 때문에 상급 종합병원에서 받겠지만 단순한 어지럼증이라면 받아줄 병원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문제는 구급대원이 병원 한 곳마다 환자 한 명당 2~3분에 달하는 브리핑을 했는데도, 해당 병원에서 ‘이 환자는 받지 못한다’고 선언할 때다. 그러면 구급대원은 또 새로운 병원에 전화를 해서 다시 같은 정보를 읊어야 한다. 상급 종합병원에서는 “중증이 아니니 우리 병원에 올 필요가 없다”는 답변이, 그 외 병원에서는 “이 환자는 중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니 우리가 아닌 상급 종합병원으로 가라”는 답이 오기 일쑤다.
구급대원은 “우리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중증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정보를 모두 종합해 병원에 알려줘야 한다”며 “하지만 전화를 거는 병원마다 환자 수용을 계속 거절할 땐, 잠시나마 상황에 따라 환자 정보를 과장하거나 축소하면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설사 이송할 병원을 찾더라도 구급대의 일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하고 환자 분류를 마친 뒤 실제 응급실 내 침대에 환자를 눕히는 것까지도 구급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경증 환자들이 몰려드는 응급실에서 침대를 배정받아 “환자 눕히세요”라는 말이 떨어져야만 철수가 가능하다. 구급대원은 “최근에 만난 경기도의 한 구급대는 병원 응급실 입구에서만 6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고 했다”며 “환자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하는 구급차가 길에서, 병원 입구에서 시간을 보내고 전화 돌리기에 바쁘니 큰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