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는 구급차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환자가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더라도 이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질환인 경우, 상급 병원이나 관련 전문 병원을 수소문해 다시 병원을 옮기는 ‘전원(轉院)’을 해야 한다. 소규모 병원 응급실에서 중증 환자를 수용 거부하는 이유도 응급 현장에 제대로 체계를 갖춘 ‘전원 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다른 병원의 중증 응급 환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환자 뺑뺑이’ 막기에 나서는 병원도 있다. 2023년부터 인공지능 응급 네트워크를 구성한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병원은 이를 통해 경기 서북부에 해당되는 파주·의정부·포천 지역 병원들로부터 필요시 심뇌혈관 질환처럼 중증도가 심한 환자를 언제든 이송받도록 했다. 이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인근 경기 서북부 지역 병원에서 이곳으로 전원되는 환자들의 뇌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결과는 물론, 심전도와 혈액 검사 결과 등과 같은 의무 기록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미리 환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필요한 수술 준비를 할 수 있는 셈이다. 일산병원이 이런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주변 병원의 응급실 상황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오성진 일산병원 기획실장은 “심장내과 또는 신경과 의사가 없는 파주·포천·의정부 지역 병원들도 필요시 환자를 일산병원으로 전원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그쪽 병원을 먼저 찾은 환자들을 수용 거부하지 않고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경기 부천과 인천에 있는 세종병원(심장 전문 병원)은 지난 2022년부터 전국에서 심장 환자들을 본격적으로 받고 있다. 이 병원은 대동맥 박리(심장 쪽 혈관 벽이 찢어져 피가 새는 증세)나 급성 심근경색 수술을 할 수 있는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365일 24시간 대기 중이다. 전국 어디에서든 관련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생기면 반드시 받아준다는 것이다.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은 “대동맥 박리 같은 질환은 치료 자원이 희소하기 때문에 권역 전체를 따져도 완전히 공백인 곳이 많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전남 목포나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도 세종병원으로 환자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