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6시 경기 부천시 소사동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 이재은(47) 간호행정팀장 메신저에 ‘나05 병동 헬프팀 요청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나05′ 병동에서 다음 날 근무 예정인 간호사 2명이 장염 등으로 갑자기 출근을 못 하게 됐으니, 대체 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럴 때 병원들은 대개 해당 병동에서 근무가 없는 비번 간호사를 불러낸다. 쉬어야 하는 날에 못 쉬는 간호사가 생기는 것이다. 부천성모병원은 달랐다. 메시지를 접수한 이재은 팀장은 즉시 ‘나05′ 병동 소속이 아니라 헬프팀 소속 간호사를 배정했다. 다음 날 헬프팀 김하진(33)·이수빈(36) 간호사가 ‘나05′ 병동의 오전 7시, 오후 3시 근무에 차례로 투입됐다.
한국 의료계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간호사 퇴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이 내놓은 해법이 의료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병원은 ‘헬프팀’이라는 대체 근무 전담 간호사팀을 운영해 퇴사율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최근엔 ‘성공 비결’을 배우려는 다른 병원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채용된 간호사 2만4390명 중 52.4%가 입사를 포기하거나 1년 이내 그만뒀다. 낮과 밤이 뒤바뀌는 ‘3교대’ 근무 체제에 주말에도 근무할 때가 많은 점도 문제지만, 건강 문제 등으로 누군가 근무를 못하면 다른 간호사가 쉬는 날에도 갑자기 출근해야 하는 점도 사직률을 높이는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장기 이식 수술이 잡히거나 에크모(ECMO·인공심폐기계) 환자가 발생할 때도 간호사가 추가로 필요한데, 이때도 누군가는 갑자기 출근해야 한다. 결국 동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아파도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천성모병원도 다른 병원들보다는 적은 편이었지만 2019년 입사 1년 이내 사직률이 18%에 달했다. 그러다 당시 간호 행정팀장을 맡았던 유정순 간호부장이 “간호사가 아파도 근무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디어를 냈다. 특정 병동에 소속되지 않은 대체 근무 전담팀을 운영하자는 것이었다. 병원은 2022년 6월 4명으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병동·중환자실 근무 경력이 3년 이상인 간호사들로만 팀을 꾸렸다. 병원도 비용 증가를 감수하고 간호사를 추가로 뽑았고, 전체 간호사 가운데 ‘자원’을 받아 팀에 배치했다.
헬프팀이 ‘갑작스러운 근무’를 전담하면서, 간호사들 사이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병원이 간호사들을 조사했더니 “몸이 안 좋아 근무 일정을 바꿔야 할 때도 동료들에게 미안했는데, 헬프팀 덕분에 마음 편히 쉬면서 건강을 회복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단순한 인력 지원이 아니라 간호사들의 마음을 채워준다”는 의견도 있었다.
헬프팀 간호사는 현재 12명으로 늘어났고, 이들이 전체 간호사 840명에게 발생하는 업무 공백 대부분을 소화하고 있다.
헬프팀 간호사는 일하는 곳이 매일 바뀌고, 근무 일정이 불확실해 확실한 보상이 없으면 헬프팀 배정을 기피할 수도 있었다. 병원 측은 헬프팀 간호사에겐 연간 24일씩 추가 휴가를 주고, 헬프팀 1년 근무 후에는 본인이 원하는 부서를 선택할 수 있는 혜택을 줬다.
헬프팀 도입 후 부천성모병원 신규 간호사 퇴사율은 2019년 18%에서 2023년 6.3%로 떨어졌고, 올해는 입사자 42명 가운데 퇴사자가 단 1명(2.4%)이었다.
유정순 간호부장은 “초기 시행착오도 겪었고 비용도 늘었지만, 결국 퇴사율을 낮춰 숙련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병원에 더 큰 이익이 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들은 추가 인건비에 대한 우려와 기존 관성 때문에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의료계 관계자는 “간호사들의 근무 문화를 바꾸는 게 병원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퍼져 헬프팀 같은 대체 근무 전담 제도가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