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은 지난 2021년 이 병원에서 출산한 A씨로부터 “분만 과정에서 담당 의사와 병원 측 잘못으로 아이가 태어난 뒤 뇌성마비에 걸렸다”며 24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의료진과 병원 측은 “중대한 과실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올 5월 법원은 이들의 책임 일부를 인정하면서 총 6억5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충청 지역 한 국립대병원 역시 3년 전 “병원 과실로 이곳에서 제왕절개로 낳은 아기가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면서 약 12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 그해 말 법원으로부터 7억5400만원 배상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래픽=이진영

이처럼 의료 사고로 발생하는 수억원대의 손해배상금 문제는 그동안 의사들이 산부인과나 소아과 등 필수 의료 분야 지원을 기피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앞으론 이 같은 상황에서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가 의료 사고 발생 시 보험으로 배상액 중 최대 15억원까지 보장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26일 “‘필수의료 의료진 배상보험료 지원 사업’을 시작해 다음 달 12일까지 의료 기관으로부터 보험 가입 신청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료 사고로 민사 손해배상 책임이 생겼을 경우 대신 배상해주는 민간 보험 상품을 만들었고, 정부가 보험료의 대부분을 내주는 구조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단 가입하면, 지난달 27일 이후 발생한 의료 사고부터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전문의냐, 전공의냐에 따라 지원 내용이 다르다. 전문의는 분만 실적이 있는 병원이나 의원급 산부인과 혹은 병원급 소아외과·소아흉부외과·소아심장과·소아신경외과에 근무해야 한다. 의료 사고에 따른 배상액이 결정되면 이 가운데 2억원까지는 의료 기관이 부담하고, 2억원 초과 분부터 17억원 사이는 보험사가 부담(최대 15억원)한다. 이를 위한 보험료는 전문의 1인당 연간 170만원을 내야 하는데, 이 중 150만원을 정부가 부담하기로 했다.

전공의의 경우 지원 범위가 훨씬 넓다. 8대 필수 진료 과목(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심장혈관흉부외과·응급의학과·신경외과·신경과)을 모두 지원한다. 다만, 배상 수준은 낮다. 배상액 중 3000만원까지는 병원이 내고, 3000만원 초과~3억원 사이(최대 2억7000만원)는 보험사가 부담한다. 이를 위한 전공의 1인당 보험료(연 42만원) 가운데 25만원을 정부가 내게 된다.

정부는 의료 사고 소송 리스크(위험)를 필수의료 기피 핵심 이유로 보고 이번 대책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의료 사고 책임 보험이 있긴 했지만, 내야 할 보험료 부담이나 적은 보상 한도 때문에 실제 가입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의료계는 이번 대책과 관련, “방향 자체는 맞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 관계자는 “전문의의 경우, 산부인과와 일부 소아 관련 과를 제외하곤 상당수의 필수의료과가 이번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며 “의료계가 대책 마련을 요구해온 형사소송 리스크 문제에 대해선 아직 정부가 별다른 발표를 하지 않은 상황 아니냐”고 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도 “국가가 대신 배상하지 않고 보험료를 지원한다는 점, 형사 처벌에 대한 특례 조치가 따로 없는 점 등이 아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