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반발에도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지역의사제’를 도입하려는 여권(與圈)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정부 내에선 “이르면 2027학년도 신입생부터 도입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17일 국회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는 ‘지역의사 관련 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한다. 정부·여당은 공청회를 시작으로 제도 도입에 필요한 입법 심사 절차를 본격화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여당 의원들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9월 초 당정 협의를 갖고 올 정기국회 내 관련 법안을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은 데 이어, 이달 초 여당 지도부와 김민석 국무총리,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추진 방침을 재확인한 바 있다. 지역의사제 도입을 통해 수도권에 집중된 의료 인력을 분산시켜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또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지방에 부족한 필수 의료 분야 인력을 확보해 특정 인기 진료과에 집중돼온 의료 인력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의대 입시 전형의 하나로 지역의사제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실시한 보건의료 대국민 설문조사에서도 지역의사제 도입과 관련, 찬성(77%) 여론이 크게 우세하게 나왔다.

현재 국회에는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4개와 정부안 1개 등 총 5개가 제출된 상태다. 주요 내용은 지역의사 전형으로 뽑은 의대 신입생들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비·기숙사비 등을 전액 지원하고, 이들에게 의대 졸업 후 최대 10년간 지역에서 의무 근무를 시킨다는 게 골자다. 정부안에는 이들이 해당 지역 안에서 근무할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되, 의무 근무 기간을 다 채우지 않으면 시정 명령을 거쳐 ‘1년 내 면허 정지’ 처분을 받도록 했다. 면허 정지가 3회 이상 누적되면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 특히 정부안은 지역의사제 선발 인원을 의대 전체 정원 외(外)가 아닌 ‘정원 내(內)’에서 뽑기로 가닥을 잡았다. 정원 내 구체적인 ‘지역의사 전형’ 비율은 추후 시행령으로 정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일반 전형을 통한 의대 입학 정원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2027학년도 이후 의대 정원 문제를 현재 의료 인력 수급 추계 위원회가 논의 중이어서, 지역의사 선발 규모도 이 위원회 논의와 맞물려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위헌 소지가 있다”며 지역의사제 도입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먼저 지역·필수 의료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의사 양성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10년 후에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데도, 구체적인 인력 양성·활용 계획도 제대로 논의하지 않은 채 여권이 일방적으로 제도부터 도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지역의사제를 통해 어느 지역에 몇 명의 의사를 양성하고 배치할지에 대해 논의도 없고,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없다”고 했다. 특히 지역의사제 선발 인력들이 최대 10년간의 ‘의무 근무’ 기간을 마친 뒤 해당 지역에서 무더기로 이탈할 가능성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전공의 수련과 전임의 과정 등을 고려하면 실제 근무 기간은 3년 남짓에 불과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의료 인력 수급 추계 위원회에서도 “의무 복무 이후 의사들이 지역에 얼마나 남느냐에 따라 정책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이탈률 등을 수급 추계 변수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에선 “이미 시행 중인 ‘공중보건 장학제’만 보더라도 지역의사제의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공중보건 장학 제도는 의대생 1인당 최대 6년간 1억2000만원을 지급하고, 2~5년간 의무적으로 지역 공공 의료 기관에서 근무토록 한 제도다. 그런데 지원자가 작년과 올해를 합해 5명에 그쳤다. 또 비록 정부에선 “대학 입학 당시부터 의무 근무 내용을 인지한 상태에서 지원하는 제도인 만큼 지역의사제에 위헌성이 없다”고 설명하지만, 의협 측은 “이는 거주 이전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 등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을 제한하는 제도”라는 입장이다.

☞지역의사제

의대생을 뽑을 때 특별 전형을 실시해 국가가 학비·교재비·기숙사비 등을 전액 지원하고, 이 전형으로 입학한 의대생은 의대 졸업 후 일정 기간(최대 10년) 특정 지역에서 의무 근무토록 하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