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8시 50분, 경기도 성남시 퍼스트소아청소년과 의원. 마스크를 쓴 아이들과 보호자 20여 명으로 대기실이 붐볐다. 진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진료를 보려는 환자들이 몰려온 것이다. 병원 측은 “최근 독감이 유행하면서 환자가 크게 늘었다”며 “접수를 다 못 받을 때도 있다”고 했다. 이 병원 김동구 원장(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은 “독감이 의심돼 검사해 보면 90%가량은 양성반응이 나온다”고 말했다.
흔히 독감으로 부르는 ‘인플루엔자’ 환자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특히 유소아·청소년층에서 환자가 속출해 방역 당국은 “10년 사이 가장 심한 수준으로 유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주(11월 2~8일) 인플루엔자 의심 환자 수는 외래환자 1000명당 50.7명을 기록했다. 직전 주(10월 26~11월 1일)에는 22.8명이었는데, 2.2배로 급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4명)과 비교하면 12배나 많다. 올해 인플루엔자 의심 환자 수는 10월 셋째 주에는 외래환자 1000명당 7.9명이었는데, 이후 계속 증가 추세다.
입원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11월 첫째 주 감시 대상인 의료 기관 221곳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때문에 입원 중인 환자는 356명으로 전주(174명)의 2배 가까이로 늘었다.
특히 유소아와 청소년층에서 유행이 심하다. 초등학생(7~12세)의 경우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환자는 138.1명, 1~6세는 82.1명, 중고생(13~18세)은 75.6명에 달한다. 서울시교육청 보건안전진흥원에 따르면 10월 셋째 주 277명이던 서울 내 초중고생 환자는 11월 첫째 주 6462명을 기록하며 3주 만에 23배로 늘었다.
경기도 군포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김모(11)군은 지난 9일부터 열이 38도까지 올랐고, 이튿날 병원에서 독감 판정을 받았다. 김군을 포함해 같은 반 학생 23명 중 8명이 독감에 걸렸다고 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학부모는 “초등학생 아이의 같은 반 학생 3분의 1가량이 독감에 걸려서 난리”라고 했다.
독감으로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이 급증하면서 맞벌이 부부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부모가 돌아가며 연차를 쓰거나 조퇴해 아이를 돌보기도 한다. 직장인 조영세(37)씨도 최근 유치원생 첫째 아들(5)이 독감 판정을 받았고, 연달아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3)까지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조씨는 “하루는 내가 연차를 냈고, 그 뒤로는 아내가 조퇴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고 했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호흡기 질환이다. 기침, 재채기 등을 통해 사람끼리 전파된다. 코로나 팬데믹이던 2020~2022년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의 영향으로 거의 유행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겨울부터 다시 유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독감 유행 시기가 두 달 이상 대폭 앞당겨졌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코로나 때 독감이 유행하지 않다 보니 집단 면역 수준이 낮아졌고, 이후 유행 규모가 커지고 있다”며 “이번 유행은 작년보다 더 강할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방역 당국도 독감 유행세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인플루엔자 환자가 70만명을 넘긴 태국을 비롯해, 홍콩, 일본, 중국 등 해외에서 독감이 크게 유행 중이기 때문이다. 홍콩에선 13세 여아가 독감에 걸린 뒤 뇌 기능 장애와 심근염 등 합병증이 와 사망한 사례까지 나왔다.
정부는 생후 6개월~13세, 임신부, 65세 이상 노년층을 대상으로 독감 백신을 무료로 접종해 주고 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은 유아·청소년 유행이 심하지만, 더 지나면 청장년층과 노년층으로도 유행이 커질 수 있다”며 “고령층과 만성 질환자 등 독감 고위험군에게 빠르게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