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전공의와 ‘주 80시간’ 일하는 계약을 맺었더라도 주 40시간을 넘긴 초과 근무 시간에 대해서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전공의와 ‘포괄임금’ 형태로 계약을 맺고 추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왔던 병원들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유사한 계약을 맺은 전공의들의 줄소송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A씨 등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출신 3명이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억6900만~1억78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그래픽=김성규

2014~2017년 이 병원에서 일한 A씨 등은 “수련 기간 근로기준법상 추가 근로 수당을 받지 못했다”며 소송을 냈다. 소송 과정에선 수련 계약을 맺은 전공의를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 계약이 포괄임금제에 해당하는지, 초과 근무 수당 지급 기준이 ‘주 80시간’(전공의특별법)인지, ‘주 40시간’(근로기준법)인지 등이 쟁점이었다.

병원 측은 “전공의들은 근로자가 아니라 수련생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각종 수당을 매월 일정액에 포함해 지급하는 ‘포괄임금 약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연장 근로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전공의가 교육생인 동시에 진료 계획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근로자이므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수련 계약에 포괄임금제에 관한 구체적 규정이 없어 포괄 임금 약정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초과근로 기준을 ‘주 80시간’이 아닌 ‘주 40시간’으로 보고 병원이 이들에게 1억6900만~1억78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주 80시간’을 규정한 전공의특별법의 취지가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제한 없이 수련하는 것을 허용하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원도 이 같은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전공의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놓고 “전공의들의 초과 근무가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돼왔던 것을 바로 잡은 것”이라며 환영하는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 일각에서는 “수련 체계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전공의 계약 형태를 포괄임금제로 유지하고 있는 병원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이번 판결에 따라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무 시간에 대해 시급의 1.5배를 산정해 추가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급종합병원의 전체 의사 규모에서 전공의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감안할 때 병원들의 부담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정갈등 이전인 2023년 말 기준 상급종합병원 의사 2만3000여명 중 전공의는 9000여명으로 약 40%를 차지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이번 판례에 따라 기존의 전공의 임금에 비해 병원 부담이 많게는 2배 가까이 늘어나는 병원들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포괄임금제로 일한 전공의들이 병원에 줄소송을 낼 가능성도 있다. 추가근로수당 등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어서, 2022년 이후 포괄임금제를 적용받은 경우 소송 대상이 된다. 다만 이번 소송 대상이었던 서울아산병원을 포함한 주요 대형병원들은 2018년부터 전공의 계약 방식을 포괄임금제에서 근로기준법에 맞춰 변경해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대학병원 원장은 “재정적 여력이 없어 포괄임금제를 유지한 병원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판결로 수련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해야 하면 병원들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되고, 결국 전공의 당직 근무 시간을 줄이거나 아예 적게 뽑는 쪽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대학병원의 한 관계자는 “의정갈등 기간 동안 ‘전공의 없는 병원’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이라며 “추가로 인건비를 부담하면서까지 전공의를 ‘고용’해야 하느냐는 얘기들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