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 행위별로 비용 대비 수익을 분석한 결과 환자 진찰과 상담, 투약, 주사, 마취 등은 원가조차 건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들은 대신 각종 검사와 영상 진단, 부대 사업으로 수익을 내고 있었다. 의료 행위만으로는 원가조차 건지지 못하는 우리 의료 시스템의 왜곡된 보상 체계의 단면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의료 수가(酬價·건강보험에서 정한 가격) 체계 개편을 위해 직접 조사한 것으로, 분석 결과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2022 회계 연도 의료 비용 편익 분석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40개 민간 종합병원의 기본 진료(진찰, 상담 등)의 원가 보전율은 52.8%에 불과했다. 투약·조제는 24.9%, 주사는 77.6%, 마취는 69.7%, 처치·수술은 95%였다. 응급 의료 관리도 50.7%에 그쳤다. 의사들이 환자의 질병을 고치기 위한 핵심 업무는 모두 원가도 못 건지는 적자 행위라는 뜻이다.
이번 조사는 정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설치된 의료 비용 분석 위원회가 지난해 2022년 기준으로 전국 77개 종합병원(민간 40곳·공공 37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것이다. 지금까지 외부 연구 용역을 맡겼는데, 이번엔 정부가 직접 의료 비용 원가 조사에 나섰다. 2023~2024년도 원가 분석은 현재 진행 중이다.
조사 결과, 병원들은 각종 검사에서 대부분 원가 이상의 수익을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능(특정 장기) 검사 118.9%, 초음파 검사 140.5%, 방사선 특수 영상 진단 201.5% 등이 대표적이다. 이 검사들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일정 금액을 내 주는 ‘급여’ 검사로 수가가 정해져 있다. 환자가 100% 비용을 내는 ‘비급여’ 검사는 원가 보전율이 이보다 크게 높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병원들의 전체 급여 행위의 원가 보전율은 94.5%인데, 비급여 행위는 134.6%에 달했다. 또 장례식장이나 식당 등 의료 외 부대 사업의 원가보전율은 180.4%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병원들이 진찰이나 상담, 주사 등 사람이 직접 하는 의료 행위에선 적자를 보고, 검사나 부대 사업에서 돈을 벌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수가는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계가 논의해 결정한다. 그런데 정부는 그동안 의료비가 급등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수가 인상을 억제해 왔다. 또, 의료계 분야별로 협상력이 달라 필수의료과의 수가는 낮게 책정된 반면, 장비 활용을 많이 하는 분야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가를 확보했다. 정부는 지난해 중증·응급·소아·분만 등은 수가를 올렸지만, 진찰료 등은 의료비 급등을 막기 위해 인상을 최소화했다. 낮은 수가가 결국 ‘박리다매식 5분 진료’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공공 병원 상황은 민간보다 더 심각했다. 공공 병원 37곳의 건강보험 급여 사업의 원가 보전율은 71.1%로, 민간(94.5%)보다 2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예컨대, 기본 진료의 원가 보전율은 45.2%, 투약·조제는 18.5%에 불과했다.
실제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들은 정부 보조금을 받는데도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중 15곳이 자본 잠식 상태였고, 의료 사업 부문만 보면 35개 의료원 전부 적자였다. 적자 규모는 총 5149억9600만원에 달했다. 직원 임금을 체불하는 의료원도 여럿이다. 한지아 의원은 “정부는 더 이상 의료 수가의 불균형을 방치하면 안 되고,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해 재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가 보전율
병원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때 들어간 비용(인건비, 재료비 등을 합친 것) 대비 수입(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 환자가 낸 비용 등을 합친 것)의 비율. 원가 보전율이 90%면 비용은 1000원인데 수입은 900원으로, 병원 입장에선 100원 적자가 발생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