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강모씨(39)는 최근 70대 부친을 모시고 치과를 갔다가 의사로부터 “치아 2개를 뽑아야 할 정도로 아버지의 잇몸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강씨의 부친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4개월에 한 번씩 스케일링(치석 제거)을 할 정도로 치아 관리를 했지만, 그사이 건강 문제로 요양 병원에 들어간 뒤 예전처럼 치아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강씨는 “간병인이 도와주는 것만으론 부족했던 것 같다”며 “치아 문제가 자칫 폐렴 같은 심각한 다른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고령 치주 질환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치주 질환자는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잇몸과 뼈에 염증이 생긴 환자를 뜻한다. 고령층의 구강 노쇠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본지가 2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5년 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고령(65세 이상) 치주 질환자는 2020년보다 48.4%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고령 인구 수가 21.9% 늘어난 것보다 더욱 빨리 증가한 셈이다. 전체 치주 질환자 중 고령자 비율은 2020년 18.4%에서 2024년 22.9%로, 고령 인구 비율 증가율(15.7%→19.2%)을 앞섰다. 안형준 연세대 치과대학병원장은 “충치만 해도 35세를 넘어가면 주춤하지만 치주 질환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많아진다”며 “단순히 잇몸이 붓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심한 염증 때문에 잇몸이 파괴돼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치주 질환자 증가의 원인으로 현대인의 식습관 변화에 따른 체질 변화가 꼽힌다. 특히 당뇨병 환자 급증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염증을 일으키기 쉬운 당뇨병 특성상 면역력이 저하된 고령자들에게 치주 질환이 자주 생긴다는 것이다. 김영택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치주과 교수는 “치주 질환은 세균에 의한 만성 질환인 만큼, 치료가 되더라도 다시 재발하기가 쉽다”며 “특히 염증을 쉽게 유발하는 당뇨병 환자의 경우 면역력이 떨어지면 쉽게 발병한다”고 했다. 또 지난 2013년부터 스케일링이 국내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된 뒤 치과를 찾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치주 질환 발견율 역시 더 늘어났다는 지적도 있다. 설양조 서울대 치과병원 교수는 “과거엔 잇몸이 붓고 약간 아프면 그냥 참고 지나갔지만, 이제는 병원에 가야 하는 질병이라고 여기게 된 인식 변화가 매우 크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치주 질환 등이 다른 질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암·치매 같은 노인성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씹는 힘이 떨어지면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키게 되는데, 이 경우 소화력이 떨어지고 근육량이 줄어 신체의 중요한 면역계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도쿄대 이지마 가쓰야 교수가 지바현 가시와시에서 고령자 약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구강 기능이 떨어진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신체 노쇠, 근감소증, 사망 위험이 2배나 높았다. 또 치주 질환이 암 발생 위험을 13% 높인다는 연구 결과(2022년·연세암병원)도 있었다.

국내 학계에선 “‘구강 노쇠’ 자체를 질병으로 보고 국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영수 연세대 치과대 학장은 “구강 노쇠는 음식물이 폐로 잘못 넘어가는 ‘흡인성 폐렴’의 발생 가능성을 높여 직접적인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도 된다”고 했다. 설양조 서울대 교수는 “개인 구강 노쇠를 막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올바른 위생 관리와 스케일링 등을 통한 정기적인 잇몸 검진”이라며 “특히 빵이나 초콜릿 등 치석이 생기기 쉬운 음식을 먹은 후에는 양치질을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