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부터 전문 인력 충원 전까지 격주로 화·수·목·금 야간(오후 7시~다음 날 오전 7시), 매주 일요일 주간(오전 7시~오후 7시) 소아청소년과 응급실 진료를 운영하지 않습니다.”
광주·전남 지역의 소아, 청소년 응급·중증 환자를 도맡아온 전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가 지난달 31일 인근 중소 병원들에 보낸 안내 문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 전남대병원 본부 차원에서 소아과 응급 전담 의사 추가 채용을 추진키로 해 소아청소년과의 이날 문자 안내는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의료계에선 “사직 전공의 복귀에도 해결되지 않는 인력난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만 해도 올 하반기에 전공의 16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단 3명에 그쳤다. 병원 관계자는 “이번에 전공의 충원이 제대로 됐다면 애당초 응급실 제한 진료 문자를 보내는 일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의정 갈등으로 사직했던 전공의들이 지난 1일부터 복귀해 출근을 시작했지만, 이처럼 필수 의료·지역 의료의 공백 사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과별 격차도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진행된 하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 전체 정원(1만3498명)의 59.1%인 7984명(레지던트 6420명, 인턴 1564명)이 선발됐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충원으로 전체 전공의 규모는 1만305명으로 예년 대비 76.2% 수준을 회복했다.
이른바 ‘피안성정재영(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으로 불리는 인기 과의 경우,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90% 안팎의 충원율을 보였다. 정신건강의학과(93.5%), 안과(91.9%), 영상의학과(91.5%), 마취통증의학과(90.7%)는 90% 이상의 충원율을 기록했다. 피부과(89.9%), 재활의학과(89.5%), 성형외과(89.4%) 등도 90%에 육박했다.
하지만 필수 의료 과목은 충원율이 높지 않았다. 특히 비수도권에선 더욱 심각했다. 비수도권 대학 병원의 심장혈관흉부외과 전공의 충원율은 4.9%, 소아청소년과는 8%에 그쳤다. 충남의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수도권에 인접해 있는데도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제주대병원은 심장혈관흉부외과뿐 아니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신경외과, 신경과 모두 지원자가 ‘제로(0)’였다. 의료계 관계자는 “심장혈관흉부외과의 경우 24시간 환자 수술을 할 수 있는 데다, 개업도 어렵다”며 “수가가 낮거나, 일이 고되고 개업이 어려운 과는 평소에도 모집이 어려웠는데, 이번에 이 같은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이번 하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 비수도권에 있던 전공의 일부가 수도권으로 옮긴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외과 충원율은 23.4%로 수도권 외과 충원율(44.7%)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지방 국립대 병원 중 상대적으로 충원율이 높은 전북대(평균 63%)도 소아청소년과는 10명 모집에 2명, 산부인과는 6명 모집에 2명만 지원했다.
필수 의료의 경우, 수도권도 충원율이 높지 않았다. 소아청소년과 16.6%, 심장혈관흉부외과는 32.8%에 그쳤다. 이중 심장혈관흉부외과는 서울 유명 대학 병원에서도 지원자가 한명도 없는 사례가 나왔다. 외과(36.8%), 응급의학과(42.1%) 등도 전국적으로 전공의 선발 인원이 모집 인원의 절반에 못 미쳤다. 한 사직 전공의는 본지 통화에서 “(환자 생명에 직접 관련되는) 바이털과에 대한 기피 현상을 예상하긴 했지만, 충원율이 이 정도로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일부 전공의는 끝내 복귀하지 않았다. 한 가정의학과 사직 전공의는 “전공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졸업하면 전문의가 되고, 무얼 하겠다’는 길이 보였는데, (의정 갈등 와중에) 수련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없어졌다”며 “피부 미용으로 월급 의사를 하고 있는데, 당분간 이렇게 일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