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낮 12시 서울 종로에 있는 통인한의원. 한 흑인 여성이 전신에서 ‘두두둑’ 소리가 나는 추나 치료(손으로 뼈·관절을 교정하거나 통증을 완화해주는 한방 치료 요법)를 받고 있었다. ‘이 한의원이 영어를 잘한다’는 인터넷 후기를 보고 찾아왔다는 프랑스인 코맘블라 마누앙씨는 “한국 여행 중에 쌓인 피로가 풀렸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이승환 통인한의원 원장은 “하루 평균 약 60명 정도의 환자가 찾아오는데, 그중 외국인 환자가 많은 날엔 10명 정도는 된다”고 했다.
국내 한의원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필수 코스’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한의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3만3893명으로 전년 대비 85% 증가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만 보면 피부과에 이어 둘째로 증가 폭이 컸다. 최근 몇 년 사이 K팝·K드라마·K뷰티 등의 영향으로 국내 피부과·성형외과뿐 아니라 한약·추나·침 등도 함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올 6월부터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까지 더해져 한의원 인기가 더욱 올라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케데헌’에는 주인공인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한의원에서 한약을 짓는 장면이 나온다.
외국인들은 케데헌에 등장하는 ‘HAN의원’과 외관이 비슷하다고 소문난 서울 종로의 서울한방진흥센터 건물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약재 족욕이나 한방 천연팩, 아로마 경락 등을 체험하고 있다. 이 센터 관계자는 “케데헌이 공개되기 전엔 월평균 방문객이 500~600명 정도였지만 공개 다음 달인 7월부터 방문객이 2000명까지 늘었다”며 “특히 족욕 체험이 인기가 많다”고 했다.
한의학계는 이처럼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으려는 분위기다. 특히 일선 한의원들은 외국인 환자를 붙잡기 위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영어로 된 입간판뿐 아니라, 진료 대기실에는 중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태국어, 말레이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의 팸플릿을 비치해 놓기도 했다. 종로 한 한의원 관계자는 “외국인 환자에게 특히 인기 있는 것은 ‘한약’”이라며 “특히 한약이 생리통이나 소화불량, 알레르기 등과 같은 질환 치료에 효과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많이 찾는 편”이라고 했다. 특히 환(丸) 형태 한약은 냄새에 대한 거부감도 적고, 부피나 무게도 많이 나가지 않아 석 달 치를 처방받아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한의학과 K뷰티를 접목한 미용 전문 한의원들도 ‘외국인 친화 병원’임을 앞세워 홍보에 뛰어들었다. 매선 리프팅(실을 피부에 넣어 얼굴 형태를 교정하는 시술) 같은 미용 목적의 치료나 다이어트 한약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외국인 환자용 소셜미디어 계정을 별도로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두나한의원 관계자는 “방문하는 외국인 대부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아보고 미리 예약한다”고 했다. 아예 동남아 지역 인플루언서를 초대해 치료의 비포·애프터(전후)를 비교해 보여주는 영상을 촬영하는 한의원도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에 나서는 한의원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달 말 한국한의약진흥원이 ‘외국인 환자 유치 및 진료를 위한 첫걸음’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한의사 약 200명이 참여했다. 외국인 환자 유치 확대를 위한 진료 사례라든지 환자 응대, 홍보 노하우를 배우려는 한의사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서울시의회도 오는 12일 ‘케데헌 열풍과 한의의료관광 활성화’ 토론회를 열고 한의원을 서울 관광 상품으로 키우려는 방안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