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심장마비로 별세한 손모(88)씨는 화장 절차를 거쳐 자연장지로 지정된 경기도 이천의 한 인공 호수에 유해가 뿌려졌다.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전 바람대로 된 것이다. 가족 내에선 “아무리 그래도 기일날 찾아뵐 수 있게 납골당에 안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견도 있었지만, 결국 손씨 뜻대로 자연장을 치렀다고 한다. 손씨의 아내도 자녀들에게 “나도 화장 후 자연장을 해달라”고 했다.
장례 방식에 대한 국민 인식이 변하고 있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단장 윤영호 서울의대 교수)이 올 5월 전국 만 19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패널 조사를 실시한 결과, 희망하는 본인의 장례식 방식 1위는 ‘화장 후 자연장’(30%)으로 나타났다. ‘화장 후 납골당’이 26.7%로 2위를 차지했고, ‘매장을 희망한다’는 응답은 6.2%에 불과했다. ‘아직 생각을 안 해봤다’는 응답이 17.4%였다. 직전 조사가 진행됐던 2021년 때만 해도 ‘화장 후 납골당’(28.8%)이 1위, ‘화장 후 자연장’(23.%)이 2위였는데, 4년 만에 순위가 뒤바뀐 것이다.
자연장이 대중적으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재계 총수였던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이 2018년 5월 별세하면서다. 구 전 회장은 화장 후 평소 자신이 아꼈던 경기도 곤지암 ‘화담숲’ 부근의 소나무 아래 묻혔다. 이는 일반인 사이에 자연장, 특히 수목장을 널리 알리고 확산하는 데 영향을 준 주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꾸준히 자연장 장려에 나선 것도 ‘한몫’했다. 정부는 자연장지 조성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고, 공공법인이 땅을 빌려서 자연장지를 만드는 것도 허용했다. 더 나아가 자연장 범위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는 화장한 유골을 육지에서 5km 이상 떨어진 바다나 장사시설로 지정된 산에 뿌리는 것도 합법적으로 가능해졌다.
한국은 이미 ‘탈(脫)매장’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사망자 중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 비율을 뜻하는 ‘화장률’은 올 3월 기준 93.9%(잠정치)에 달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20~30%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사망 후 10명 중 9명 이상이 화장될 정도로 장례 문화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집안에 선산이 있는데도 화장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경남에 사는 도모(54)씨는 최근 처가 어른의 장례를 치렀는데, 고인의 시신을 화장했다. 선산이 있긴 하지만, 지난 1999년을 마지막으로 이후 돌아가신 집안 어른들을 모두 화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남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때까지만 해도 (조상님의 묘를) 관리하지만, 자식 세대에게까지 이를 넘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또 선산이 주로 지방에 있는 것과 달리 자식들은 수도권에서 생활한다는 점, 핵가족화로 자식 수가 과거와 달리 줄어든 점 등도 이유로 꼽힌다. 올 1월 아버지를 화장한 권모(56)씨는 “화장이 매장보다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화장할 곳을 찾기도 매장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했다”고 했다.
매장에 필요한 땅도 부족해진 상태다. 적지 않은 공원묘지들은 이미 분양이 완료돼 더 이상 매장을 받지 않는다. 경기도 평택의 한 공원묘지 팀장은 “평택에 있는 공립 묘지 3곳 모두 매장 부지가 가득 찼다”며 “지금은 묘지 이전이나 화장하기 위한 개장(改葬)만 하고, 신규 매장은 아예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 이번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 조사에서 응답자의 83.9%는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하는 ‘조력 존엄사’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는16.1%에 그쳤다.
☞자연장
화장한 유골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방식의 장례. 유골을 어디에 뿌리냐에 따라 수목장(나무), 화초장(꽃), 잔디장(잔디), 해양장(바다) 등으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