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탄을 어찌 할꼬.’
요즘 자살 관련 대책을 만드는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은 번개탄 관리 문제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첫 국무회의에서 복지부 장관에게 우리나라 자살률이 유독 높은 이유를 물은 뒤 복지부는 자살률을 낮추는 대책을 마련 중입니다. 여기에 번개탄 같은 자살 수단을 규제하는 내용을 넣을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이죠.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7.3명으로 2004년 이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줄곧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지부가 ‘번개탄 규제’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정부에서 겪은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복지부는 2023년 ‘5차 자살 예방 기본 계획안’에 자살 도구로 많이 쓰이는 번개탄 중의 일부를 생산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가 “교통사고 났다고 차를 없애는 격”이라며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복지부는 여러 자살 예방 서비스를 강화하는 쪽으로 대책을 준비 중이지만, 일각에선 “자살 수단 관리를 아예 하지 않는 것도 찜찜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WHO(세계보건기구)도 3대 자살 예방 원칙 중 하나로 ‘자살 수단의 접근성 제한’을 들고 있습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 충동이 생기는 시간은 짧은 편인데, 여기에 접근이 쉬운 자살 수단이 더해지면 자살률을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 번개탄은 국내에서 목맴, 추락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자살 유형입니다.
전문가들은 “파라콰트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고 합니다. 맹독성 제초제인 파라콰트는 국내에서 ‘그라목손’이라는 상품명으로 판매가 됐는데, 2010년까지 매년 1000명 이상이 이 농약으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2011년 말 그라목손 판매를 금지시킨 뒤 그해 인구 10만명당 31.7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던 자살 인원이 감소세를 보였죠.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그라목손 판매 금지 후 2013년까지 전체 자살 건수는 10%, 음독 자살 건수는 46.1% 감소했습니다.
반면 번개탄으로 인한 자살 인원은 증가 추세입니다. 2011년 1165명이었던 번개탄 자살자 수는 2021년 1763명으로 600명 가까이 늘었습니다. 일본과 대만 등은 번개탄을 판매대가 아니라 별도 창고에 보관하도록 하고, 판매도 주인이 용도 등을 물어보고 직접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구매자의 언행을 살펴 위험 신호가 감지되면 만류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기 위해서죠. 전문가들도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쉽게 번개탄을 구입하는 것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뾰족한 자살 예방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번개탄 규제 카드’에 대한 복지부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