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울산 울주군 온양읍 하서마을 회관. 임생금(105), 김두리(102), 오무식(102) 할머니가 서로를 보며 “왔는겨” 하고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 마을은 전국 최고령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손꼽힌다.
세 사람 모두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아닌 집과 마을 회관을 오가며 생활한다. 큰 병 없이 허리가 굽고 무릎 관절이 약해졌을 뿐이다. 약도 거의 먹지 않는다. 김 할머니는 하루에 혈압약 하나 먹는 것 외엔 따로 먹는 약이 없다. 이날 회관에서 만난 박옥란(88) 할머니는 “100세 넘은 언니들이 우리보다 더 정정하다”고 했다.
① 소박한 식생활
세 할머니는 아침저녁은 집에서, 점심은 대부분 마을 회관에서 다른 어르신들과 함께 먹는다. 식사는 직접 기른 상추, 시래기, 열무, 부추 등 채소 위주로 삼시 세끼 챙겨 먹는다. 이날 회관 냉장고를 열어보니 채소들이 비닐봉지에 싸여 가지런히 보관돼 있었다. 어르신들이 함께 조금씩 꺼내 나눠 먹는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고기는 안 좋아해. 그냥 된장에 채소 묻혀서 먹는 게 젤 낫다”고 했다. 반찬이 부족한 날엔 된장국에 물 말은 밥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② 매일 걷는 습관
이들은 매일 오전 마을 회관까지 걸어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김 할머니는 오전 10시쯤 성인용 보행기에 몸을 의지해 150m를 걸어 회관에 나오고, 오후 4시쯤 귀가한다. 오 할머니도 장날을 제외하곤 거의 빠짐없이 출석한다. 비 오는 날엔 우비를 입고 전동차를 끌고 회관에 ‘출근’한다. 하서마을 회관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사는 임 할머니도 집 근처 경로당까지 매일 걸어 나온다.
③ 밭일, 장터 나들이로 삶의 활력
오 할머니는 최근까지도 밭일을 놓지 않는다. 마을 회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집 앞 100평 밭에서 상추, 미나리, 배추, 무 등을 가꾼다. 직접 기른 채소를 들고 인근 장터에도 나간다. 3일·8일 장날이면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노인 지원 택시를 타고 장터로 향한다. 도착하면 장사가 잘될 만한 자리를 골라 오전 내내 채소를 판다. 경제적 이유만은 아니다. 그는 “많이 팔고 적게 팔고 그런 게 뭐 중요하노. 사람 구경도 하고 좋다”고 했다. 나이가 들며 귀가 어두워진 뒤에도 밭일을 하고 장에 다녀올 만큼 정정하다.
④ 적극적인 대화와 관계 유지
마을 회관은 세 할머니의 삶의 중심이자 일상의 거점이다. 이들은 회관에서 80~90대 어르신들과 어울려 식사하고 대화하며 시간을 보낸다. 가족 이야기, 동네 소식, 농담을 주고받으며 외로움을 덜고 정서적 안정도 얻는다. 김 할머니는 “내 여기 와서 산다. 놀아도 여기서 논다. 여기 열다섯 살이나 어린 애들도 있는데, 뭐 ‘턱이 나가겠나’, 그냥 나오는 거지”라고 했다.
⑤ 긍정과 유머로 스트레스 없는 삶
마을 회관엔 늘 유쾌한 농담이 오가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경로 잔치를 앞두고 마을 이장이 “할매, 언니 100세 생신 경로 잔치 할 낀데 같이 갑시다”라고 하자, 99세 할머니가 “난 안 갈란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 할머니가 “지랄하고 있네, 언니 생일이면 딱 와가지고 생일 축하해주고 이래야지”라고 해 모두를 웃게 했다. 마을 이장은 “이게 바로 100세 인생의 여유구나 싶었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귀가 밝고 말도 또렷해 평소에도 재치 있는 입담으로 주변을 즐겁게 한다. 자녀 없이 홀로 살면서도 누구보다 건강하다는 말을 듣는다.
⑥ 온 마을의 보살핌
온 마을이 함께 어르신들을 돌본다. 마을 회관은 단순한 쉼터를 넘어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한다. 회관에 어르신 한 분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다른 어르신들이 전화를 돌려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회관에서 만난 허미영(53) 어르신은 “장수 마을 사람들은 다 오래 살고, 동네 사람들도 좋고, 서로 잘 챙긴다”고 했다. 마을 이장은 매일 회관을 찾아 식사를 챙기고, 반찬이 부실할 땐 군·읍에 직접 요청하기도 한다. 작년엔 군에서 회관 입구부터 화장실까지 안전 바를 설치하고, 출입문도 이중문으로 바꿨다.
하서마을에 100세를 넘긴 어르신이 세 명이나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에야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이달 1일 마을에서 처음 경로 잔치가 열렸다. 마을 주민 등 70~80명이 참석했다. 이후 하서마을은 ‘장수 마을’로 불리며 외부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5월 1일을 경로 잔치의 날로 정해 기념하기로 했다.
현재 이 마을에는 100세 이상 어르신이 3명, 99세 1명, 98세 1명, 90세 이상 10명, 80세 이상 30명, 60세 이상 60명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