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A(25)씨는 수년째 구직 중이다. 그는 3년 전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을 접고 중소기업에 취직했지만 업무 실수를 이유로 한 달 만에 퇴사했고 이후 입사 준비를 계속하고 있다. A씨는 “답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언제나 가슴속에 울화가 차 있는 것 같다”며 “가족들에게도 사소한 일로 화를 내는 일이 잦다”고 했다.

답답하고 분한 ‘울분(鬱憤)’을 가진 국민 비율이 지난해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6월 조사에서는 49.2%가 만성적 울분을 가진 것으로 집계됐는데, 올해 4월 조사에서는 54.9%로 5.7%포인트나 올라간 것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건강 재난 통합 대응을 위한 교육 연구단’은 7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정신 건강 증진과 위기 대비를 위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15~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500명을 설문 조사한 것이다.

연구단은 울분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1년 동안 심하게 스트레스받는 일’ 등 19문항을 묻고, 0점(전혀 없었다)~4점(많이 있었다)으로 응답하게 했다. 그 결과 중간 수준의 울분(1.6~2.5점)이 42.1%, 심각한 울분(2.5점 이상)이 12.8%로 조사됐다. 합치면 54.9%로, 국민 절반 이상이 만성적 울분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작년 조사에서는 중간 수준의 울분이 39.9%, 심각한 울분이 9.3%로 총 49.2%였다.

전반적인 정신 건강 수준을 묻자 응답자의 48.1%는 ‘좋지 않다’고 답했다. ‘보통’은 40.5%, ‘좋다’는 11.4%에 그쳤다. ‘좋지 않다’고 답한 이들은 그 원인으로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37%)’를 1순위로 꼽았다. ‘타인·집단의 시선과 판단이 기준이 되는 사회 분위기(22.3%)’가 뒤를 이었다.

‘기본적으로 세상은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69.5%에 달했다. 응답자의 47.1%는 지난 1년간 건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제 활동층인 40대(55.4%), 30대(51.7%)와 월 소득 200만원 미만(53.8%)이 스트레스에 취약했다. 조사를 총괄한 유명순 교수는 “의료적 노력은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 정신 건강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