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한국의 간호사·조무사들은 광부와 함께 독일로 파견돼 현지에서 일했다.
박정희 정부는 독일 정부와 1963년 독일로 근로자를 파견하는 ‘한독근로자채용협정’을 맺었다. 6·25전쟁 이후 기근에 시달리던 한국은 서방의 무상 원조가 급격히 줄어들고 국내 실업 문제가 심각하자 외화를 벌고 실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인력을 수출한 것이다. 1966년 당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8억달러로 세계 최빈국이었다. 반면 독일은 산업화에 따라 고령 인구가 늘고 있었고, 돌봄 인력은 부족했다.
파독 간호사들은 주로 한국에서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일하다 독일에 갔다. 1966년 1월 간호사 128명을 시작으로 1970년대 후반까지 파견됐다. 전체 파독 간호사가 몇 명인지 공식 기록은 없지만, 1만~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독일에서 일하며 번 돈의 대부분을 한국으로 송금했다. 파독 간호사를 비롯한 ‘파독 근로자’들이 1965∼1975년 고국으로 송금한 돈이 1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번 외화가 산업화 시기 한국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것이다. 인적 교류를 통해 한독 관계는 더 탄탄해졌다.
이들 중 상당수는 현재 해외 거주 등으로 연락이 끊겼거나 질병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 관계자는 “정부에서 집단적으로 보낸 광부와 달리, 파독 간호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갔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나 기록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