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대안암병원의 한 강당. 흰 가운을 걸친 의사 200여 명이 100m 넘게 일렬로 줄 서 있었다. 이들은 현장에 쌓여 있던 준비된 사직서에 자기 이름을 적고 사인을 했다. 이어 “교육은 백년대계, 의대는 하루 만에?” “전공의 면허정지 대한민국 의료 정지” 등 구호를 제창한 뒤 강당 앞 투명함에 사직서를 집어넣었다.
비슷한 시각,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응급실 대기 환자와 구급대원 줄이 병원 건물 바깥까지 이어졌다. 응급실 앞에서 만난 사설 구급대원 A씨는 “이 병원에서 폐 이식 수술을 받았던 환자인데, 호흡곤란 증세로 이송했다”며 “30분째 환자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고 했다.
이날 교수들이 집단 사표를 낸 의대는 서울대·연세대·울산대·고려대·부산대·충남대·전남대 등 확인된 곳만 19곳이다. 전국 의대 40곳 중 절반에 육박하는 의대 교수들이 앞서 예고한 사직 날짜인 이날부터 사표 제출을 시작했다. 6개 의대는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 시 사직서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이 밖에 충북대 등 15개 의대도 교수 일부가 사직서를 냈거나, 사직서 제출 여부·시기 등을 논의 중이어서 숫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달 전공의 집단 이탈에 이어 중환자를 전담하는 대학 병원 교수들의 줄사표가 현실화된 것이다.
전날인 24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단이 비공개 간담회를 한 이후 대립하던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대화 무드가 생겼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로 인해 의대 교수들이 사표 제출을 연기하고, 정부도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유보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의대 교수들은 예정대로 사표를 냈다. 경기도 한 대학 병원 교수는 “24일 간담회에서 전의교협 집행부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가장 중요한 의대 정원 문제는 논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수들이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는 분위기”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의대 2000명 증원’ 방침은 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의대 정원은) 시장에서 물건 값 깎듯이 흥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의대 교수들은 사표를 내더라도 수리되기 전까진 환자 진료·수술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각 대학 총장과 병원장이 교수들의 사표를 수리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렇다 해도 대형 병원의 진료 기능은 시간이 갈수록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많다. 의대 교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대하는 ‘준법투쟁’을 택했기 때문이다. 전국 의대 39곳이 속한 전의교협은 최근 “25일부터 교수들은 (법정 근로시간인) 52시간 이내로 진료할 것”이라고 했다. 교수들은 전공의 이탈 후 일주일에 2~3번씩 야간 당직을 서고, 진료와 수술까지 하고 있어 현재 주 90~100시간 정도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계 인사들은 “교수들의 근로 시간이 사실상 반 토막 나기 때문에 외래진료와 수술·입원도 지금보다 절반 정도로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교수들은 경증 환자가 많은 외래진료를 크게 줄일 예정이다.
또 다른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이탈한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은 당분간 유보될 전망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6일부터 면허정지가 가능하지만, 대화 분위기를 감안해 당분간 처분을 보류하기로 했다”며 “면허정지 절차가 시작되는 시기는 빨라도 다음 달쯤 아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