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중재로 정부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가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하기로 24일 합의하면서, 교수들의 집단 사표 움직임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앞서 전의교협은 소속 39개 의대의 교수들이 25일부터 순차적으로 사표를 내기로 결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정부와의 협의체 구성이 가시화하면 일부 대학은 사표 제출을 미룰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정부의 면허정치 처분도 유보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전의교협 소속 한 대학교수는 “39개 의대 중 10~20곳 교수들은 예정대로 25일부터 사표를 낼 것 같다”면서도 “나머지 의대들은 각 대학 상황에 따라 제출 시기가 좀 더 늦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인턴·레지던트)처럼 중환자를 두고 집단 이탈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표를 낸 교수들도 수리가 되기 전까진 환자 진료를 계속하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다만 각 의대와 연결된 대형 병원의 외래 진료가 줄어들 전망이다. 앞서 전의교협은 “25일부터 주 52시간 이내로 외래·수술·입원 진료를 하겠다”고 했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이탈로 교수들은 주 80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며 “응급·중증 환자 진료는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줄어든 근무 시간만큼 외래 진료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교수들은 “번아웃(극도의 피로)이 심해 진료 시간을 줄이는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하는 ‘준법 투쟁’의 성격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병원의 외래 진료가 당장 이번 주부터 대폭 줄어들 가능성은 많지 않다. 병세에 따른 진료 시급성 등을 판단해 2주째인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외래 진료를 감축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때부턴 예약된 외래 진료가 상당히 연기될 수 있다는 뜻이다.
대형 병원 교수들은 “39개 대학이 예고한 대로 다음 달부터 외래 진료를 최소화할 경우 다음 달 중으로 외래 진료가 절반 정도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지금도 수술·입원은 50% 정도 감소했다. 수술과 외래 진료라는 양대 축으로 운영되는 대형 병원의 치료 기능이 반 토막 나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대형 병원의 ‘외래 진료 축소’ 움직임이 ‘(중환자) 수술·입원 축소’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교수 사회에선 “끝까지 응급·중환자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젊은 30~40대 교수 중 상당수는 “사표 수리 여부와 관계없이 현장을 떠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의료계에선 대형 병원들이 중환자 수술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교수 이탈률 30%’ 정도로 보고 있다.
의대 교수의 누적된 피로도 중환자 진료 축소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아산병원의 한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교수들의 체력이 일직선으로 서서히 하락하는 게 아니라 계단식으로 뚝 떨어진다”며 “하락 주기도 점점 짧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번엔 교수들이 전공의 파업 한 달여 만에 외래 진료를 줄였는데 앞으로는 보름이나 열흘 단위로 추가 ‘진료 축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공의 이탈 장기화로 간호사 등 의사 외 다른 직종의 불만이 높아지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경희대병원 등은 최근 전공의 이탈로 인한 경영 악화 때문에 병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 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간호사와 직원들 사이에선 “잘못은 의사들이 했는데, 왜 남은 사람들이 피해를 봐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만약 간호사들도 의사 업무를 대신하지 않고, 장시간 근로도 하지 않겠다고 ‘준법 투쟁’을 벌이면 대형 병원의 수술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