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필수 의료 분야에서 나타나는 인력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가 내놓는 대응 방침을 두고,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이 “산불이 났는데 ‘불 끄자’는 말은 안 하고 ‘나무 심자’는 말만 하는 격”이라며 “한가한 대책만 내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 원장은 지난 4일 공개된 ‘계간 의료정책포럼’에 실린 ‘필수 의료 위기와 의대 정원’이라는 제목의 시론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정말로 필수 의료 붕괴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고 행여 선거를 앞두고 국민적 관심도가 높고, 표 얻기에 좋아 보이는 사회적 이슈를 하나 던지자는 식의 발상이라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했다.
우 원장은 먼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필수 의료 분야에서 발생하는 의료 공백 현상에 대해 정부가 잘못된 진단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 원장은 “‘응급실 뺑뺑이’는 과거 우리나라에 응급환자 분류·후송을 담당하는 ‘1339 응급콜’이 법 개정에 따라 119로 통폐합되면서 생긴 일”이라며 “법 개정 이후 전문성이 없는 소방대원이 응급환자를 대형 병원으로만 보내니 경증 환자가 응급실 내원 환자의 90% 가까이 차지하게 됐고, 이 때문에 중증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뺑뺑이’가 생겼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2001년 중앙응급의료센터 및 12개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설치한 1339센터는 전화를 걸어온 일반인에게 응급 및 일반 상황을 구분해 주고, 구급대와 병원 간 업무를 조정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하지만 “119와 1339의 이원화는 비효율적” 등 지적이 나오면서 1339센터를 없애고 의료 상담 기능을 119에 통합했다.
우 원장은 ‘소아과 오픈런’ 현상에 대해서는 “저출산으로 소아 인구가 감소하면서 소아과 의원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했다. 이어 “젊은 엄마들이 소아과 진료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맘카페 등에서 악의적 소문을 퍼뜨리면서 동네 소아과가 문을 닫는 경우도 늘어났고,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들이 늘어나면서 아침 시간에 환자가 집중되는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더러 젊은 엄마들이 일찍 소아과 진료를 마치고 아이들을 영유아원에 보낸 후 친구들과 브런치 타임을 즐기기 위해 소아과 오픈 시간에 몰려드는 경우도 있어서 ‘소아과 오픈 때만 런’이지 ‘낮 시간에는 스톱’”이라고 했다.
우 원장은 ‘향후 초고령사회 대비를 위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정부 주장도 비판했다.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진료 횟수(14.7회), 인구 1000명당 병상수(12.7병상) 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는 점을 들면서 의료 공급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우 원장은 OECD 다른 회원국과 비교해 한국의 의사 소득이 많다는 진단도 ‘가짜뉴스’라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전문의의 경우 구매력(PPP)을 적용하면 봉직의 기준 OECD 31개국 중 2위, 개원의 기준 11개국 중 3위지만, 환율(USD)을 적용하면 봉직의 8위, 개원의 6위로 중위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사 소득 논란의 밑바탕에는 ‘가진 자에 대한 증오’를 동력으로 하는 계급 투쟁적 이념이 담겨 있다”며 “이런 식으로 의사 죽이기에 나서면 어떻게 되는지는 문화혁명 이후 중국 의료 붕괴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