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맞벌이 주부 최모(39)씨는 지난달 새벽 고열에 시달리는 다섯 살 딸을 데리고 집 근처 대형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소아 응급 담당 의사가 없어 진료가 안 된다”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른 병원 응급실에도 전화했으나 모두 “진료할 의사가 없다”거나 통화 연결도 안 됐다. 경기도 한 병원은 전화 연결은 됐는데 “서너 시간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고 했다. 최씨는 전에 들었던 비대면 진료 앱(애플리케이션)을 떠올리고 급히 접속해 “해열제를 먹였는데도 열이 39도가 넘어요”라고 질문을 올렸다. 곧바로 “발열이 반드시 위험한 상태를 의미하진 않는다. 해열제를 먹였으니 경과를 지켜보고,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에 가라”는 전문의 답변이 올라왔다. 애를 태웠던 최씨는 간신히 안도했다.
최씨처럼 요즘 소아 자녀를 둔 부모 사이에서 온라인으로 진료 상담을 하고 약 처방을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 비(非)대면 진료 플랫폼이 각광을 받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갈수록 줄면서 ‘소아 진료 대란’ 조짐까지 보이자 부모들이 온라인 진료로 눈을 돌리고 있다.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운영하는 닥터나우에 따르면, 전체 비대면 진료 과목 중 소아청소년과 비율은 최근 3개월 동안 매달 평균 24.8% 늘었다. 11월 이후 전체 비대면 진료에서 소아청소년과의 비율은 11.2%→12.7%→14.3%로 증가세가 이어진다. 휴진 병원이 많은 주말에는 이용량이 주중 대비 50% 많았다. 작년 한 해 전체로 소청과 비율은 13%로 내과·피부과·이비인후과에 이어 넷째지만 유·소아 엄마가 많은 30~40대 여성 이용자로 범위를 좁히면 소청과 비율이 23.7%로 1위다. 닥터나우 상담 서비스에도 최근 3개월간 ‘신생아’ ‘아기’ ‘남아’ ‘여아’ 등 소아 진료 관련 키워드가 매달 평균 3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역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운영하는 굿닥도 전체 비대면 진료 과목 중 소아과 비율이 올 들어 2배 급증했다.
닥터나우 담당자는 “지난해 12월부터 소청과 진료와 상담 모두 빠른 속도로 늘었는데 그즈음 가천대길병원이 소청과 입원 진료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힌 영향인 듯하다”면서 “같은 기간 코로나 재유행과 감기·독감 동시 유행도 겹치면서 병원을 제때 가지 못한 엄마들이 온라인 진료로 눈을 돌린 것”이라고 말했다. 닥터나우 실시간 무료 상담은 오후 8시부터 자정 사이에 이용량이 가장 많아 전체의 24%에 달한다. 굿닥 담당자도 “소아과 예약 자체가 어렵고 대기 시간도 길다 보니 한밤이나 공휴일처럼 병원 접근이 어렵고 응급실 방문도 안 될 때 대안으로 비대면 진료를 찾는다”고 했다.
비대면 진료가 영유아 관련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닥터나우 포함 주요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이 야간 진료와 함께 약 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어 밤늦게 퇴근하는 직장인 부모들이나 초보 부모들에게 특히 유용하다는 평가다. 질문을 던지면 5분 안에 답해주는 의료 전문가가 있어 간이 해열제 이외의 처방이 필요할 때, 응급실에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비대면 진료를 요긴하게 활용한다는 것이다.
다만 한계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비대면 진료는 한시적 허용 상태다. 코로나로 잠시 풀어줬지만 감염병 위기 단계가 ‘심각’ 밑으로 내려가면 바로 중단된다. 정부는 이를 제도화하려 추진하고 있지만 “오진 가능성이 높아지고 의약품을 오남용할 수 있다”는 의사들 반대에 가로막혀 있다.
아직 소아 비대면 진료 내용 대부분도 감기 등 경증에 그친다. 소아 응급 진료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한 소청과 전문의는 “경증 위주인 비대면 진료는 이 같은 공백을 일시적으로 때우는 ‘땜질’에 불과하다”며 “정부는 소아 중환자 실태 파악, 야간·휴일 소아 외래진료 기관 확대 등 소아응급 진료 분야 위기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