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의 한 전자담배 판매점에 전자담배들이 진열되어 있다. /뉴스1

최근 몇 년 새 전자담배와 가향(加香) 담배 등 신종 담배 제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가적 금연 운동이 무색하게 총 담배 소비가 증가세로 반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과 여성·사무직 등을 중심으로 신종 담배 소비가 전통 궐련(잎담배) 소비 감소량보다 더 많이 늘어 전체 담배 소비량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총 담배 판매량은 17억8070만 갑으로 작년 상반기(17억4830만 갑) 대비 2% 증가했다. 2019년 상반기(16억7300만 갑)와 비교하면 6.4% 늘었다. 3년 연속 증가세다. 이에 따라 연간 총 담배 소비량은 2019년 34억4000만 갑에서 2020년과 2021년 35억9000만 갑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 더 증가할 전망이다. 호흡기 질환 위험이 큰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담배 소비가 늘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 궐련형 전자담배의 판매량이 지난 3년간 33%(상반기 기준)의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다. 국가적 금연 운동으로 십수 년간 궐련 소비가 매년 줄어왔지만 최근 궐련형 전자담배가 이를 상쇄하면서 점유율도 14%로 올랐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기존 담배 절반 정도 길이의 담뱃잎이 포함된 전용 스틱을 전자기기에 끼워 섭씨 400도 이하로 가열해 증기를 흡입하는 방식이다. 담배 업체들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궐련보다 건강에 덜 해롭다”고 주장하지만, 의료계에서는 “궐련형 전자담배도 암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하며 건강에 덜 해롭다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그래픽=송윤혜

특수 제조 액상에 니코틴을 녹여 들이마시는 액상형 전자담배도 최근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2019년 액상형 전자담배로 인한 폐 손상으로 미국 전역에서 68명이 사망하고 2800여 명이 질환을 겪은 바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인터넷 포털 쇼핑 사이트 4만여 곳과 오프라인 매장들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를 판매 중이라고 추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궐련에서 액상형·궐련형 전자담배 등 신종 담배로 사용 제품을 바꾸거나, 중복으로 사용하는 행태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여성, 사무직 근로자 등을 겨냥한 신종 담배는 전 세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전자기기 사용을 즐기는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을 다국적 담배 회사들이 주목하고 있다. 국제 시장 조사 기관인 그랜드 뷰 리서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자담배가 아시아·태평양과 중동 등지에서 점차 더 인기를 끌 것”이라며 “여성과 청소년층의 소비 증가가 담배 시장의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작년 기준 8499억달러(약 1141조원)인 세계 담배 시장이 2030년에 1조499억달러(약 1410조원)로 연평균 2.4%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 조사 기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20국 가운데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한국(4.6%)이 5위로 러시아(7.8%), 일본·이탈리아(6.7%), 그리스(5.3%) 다음이다. 필립모리스와 KT&G 등은 2025년까지 전자담배 등 신규 제품 매출을 5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래픽=송윤혜

업체들이 신종 담배에 주력하는 건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란 분석도 나온다. 담배사업법상 담배는 ‘연초의 잎’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전자담배 등이 각종 규제에서 벗어난다. 예컨대 궐련형 전자담배 기기 외부에는 흡연 경고 사진과 문구를 넣지 않아도 된다. 특히 연초의 잎이 아닌 줄기·뿌리를 원료로 만들면 제세부담금 부과 외의 법적 규제는 힘들어진다. 합성 니코틴으로 만들면 아예 모든 규제를 받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전자담배는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고 건강에 해롭다”면서 “전자담배에도 궐련과 같은 규제를 적용하라”고 촉구했지만 한국은 소극적이란 비판이 나온다.

현재 흡연 전용 기구 등의 판촉을 금지하고, 담배 등 이용 정보를 영리 목적으로 인터넷에 게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정부 개정안이 국회에 묶여 있다. 전자담배 기기에 경고 그림·문구를 표기하고, 담배 정의를 ‘니코틴 원료’ 등으로 확대하자는 의원 발의안들도 계류 중이다.

전자담배는 궐련과 똑같이 중독을 유발하는 니코틴을 포함하고 있다. 의료계에선 “건강에 해롭고 금연을 늦출 뿐”이라고 지적한다. “전자담배가 배출하는 유해 물질이 궐련보다 낮다”는 담배 회사들 주장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미량의 담배 성분에만 노출돼도 암 등 질병 유발 가능성이 급격하게 커진다”고 반박한다. 임민경 인하대 의대 교수는 복지부 주최 금연정책포럼에서 “담배 회사가 영업 비밀을 빌미로 (전자담배 등) 제품과 배출물 성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국제 연구자들이 궐련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데만 수십 년 걸렸고 전자담배는 제품 출시와 사용 기간이 최근 수년간으로 짧아 유해성을 입증할 시간이 부족한데, 일부 담배 회사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금연학회는 “가열 담배(궐련형 전자담배)가 기존 담배보다 건강에 덜 위해하다는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20년)에 따르면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은 남성의 경우, 30대가 14.2%로 가장 높고 40대(10.1%), 20대(9.8%) 순이다. 여성도 20대(3.6%), 30대(2.1%)에서 높다.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액상형 전자담배 현재 사용률은 2020년 1.9%에서 2021년 2.9%로 늘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청소년의 궐련 흡연이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학계에서는 여성·청소년의 응답 외 실제 흡연율은 훨씬 높다고 본다. 그런데도 담배 회사들은 최근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연결해 전화·문자 알림까지 표시하는 고가 제품을 비롯해 제품 다양화에 나서고, ‘무료 체험 행사’ 등 각종 마케팅으로 젊은 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첫 흡연으로 진입하도록 흥미를 유발하고, 각종 마케팅으로 유해성을 가려 향후 금연을 더 어렵게 만드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