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종합병원의 한 소아·청소년암 전문의는 얼마 전 4일간 신경모세포종 항암 치료 후 퇴원하는 2세 아이 진료비 총액을 보고 놀랐다. 140만원으로 같은 기간 같은 치료를 받은 27세 성인(550만원) 3분의 1에도 못 미쳤기 때문이다. 같은 암 치료에 들어가도 성인의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약제 종류가 다양한 데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 신약 등도 과감히 쓸 수 있어 진료비가 많이 나온다는 설명. 이 때문에 소아암 환자를 다루는 병원들 사이엔 말 못 할 고충이 쌓이는 실정이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국내 발생 소아·청소년암 환자는 연간 1000~1500여 명이다. 완치율은 8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아·청소년암은 0~18세 연령대에서 많이 일어나는 암을 설명하는 용어로, 백혈병과 뇌종양, 호지킨림프종, 골암 등이 흔하다.
문제는 이 소아암 치료 인프라가 점점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김혜리 부교수는 “현재 국내 소아암 치료 체계는 적자 폭등, 의료진 고갈, 지방 의료 붕괴 임박 등 총체적 위기”라면서 “소아암은 국가 의료 정책에서도 중점 대상인 암, 소아청소년과 질환, 희소 질환 세 분야 어디에도 끼지 않아 ‘깍두기 신세”라고 말했다.
소아암은 완치율은 높지만 치료 강도는 성인보다 세다. 성인은 암 환자라도 통원 치료가 대개 가능하지만 소아는 대부분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 입원 이후에도 365일 24시간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의가 병원별로 최소 2~3명 이상은 필요하다. 채혈·정맥주사·골수검사 등 치료 과정에서 필요한 각종 시술을 할 때도 의료진이 동시에 여러명 필요하고, 진료 과정마다 환자와 보호자 2명 이상에게 설명과 동의를 구해야 하는 등 추가 업무가 많다. 예를 들어 3세 아이 뇌척수액 검사를 하려면 의료진 3~4명이 아이를 붙잡고 1시간 동안 땀을 흘려야 하지만 수가는 검사비 3만원이 전부다. 의료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반면, 그만큼의 인건비는 진료비에 반영되지 않는다.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과 이준아 전문의는 “소아암 환자는 체구가 작아 약제 등을 적게 쓰다 보니 병원 입장에서 매출이 적다”며 “또 성인에 비해 소아는 약제 등에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다”고 했다.
더 문제는 앞으로 닥칠 인력난이다. 현재 전국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67명. 평균 연령은 50.2세(최고령 64세, 최연소 35세)다. 절반 가까운 31명이 10년 내 은퇴, 14명이 5년 내 은퇴한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신규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2.4명으로 은퇴하는 만큼 신규 전문의가 충원되지 못하고 있다. 소아암 센터 한 곳에 필요한 진료·진찰 전문의는 최소 4인, 입원 환자를 돌볼 전문의는 최소 6인이다. 병원에서 의사를 더 고용하면 되겠지만, 중증 진료를 할수록 적자인 우리나라 의료보험 수가 구조와 소아·청소년암 진료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전무한 현실에서 어느 병원도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를 더 고용하지 않으려 한다.
지역 불균형도 심각하다. 소아암 전문의 절반이 서울에 몰려 있고, 강원·경북 지역엔 1명도 없다. 그렇다 보니 지방 병원에선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1~2명이 주말도 없이 매일 입원 환자와 외래 환자를 관리하는 실정이다. 학회는 “소아암 환자의 총진료비가 성인암 환자의 반값인데 어느 병원 경영진이 소아암 진료를 위한 인력과 시설에 투자하겠느냐”고 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젊은 의사들에게 소위 3D(고난도·고강도·고위험)인 소아암 분야를 사명감만으로 버티라고 독촉할 수도 없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는 “소아암 포함 중증 질환은 국가 기반 시설에 준하는 필수 체계로 관리해야 하고, 이를 위한 관련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매년 암으로 진단 받는 어린이 약 1만6000명을 대상으로 소아암 연구 확대와 생존자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법안을 2018년 통과시켰다. 국립암자문위원회엔 소아종양학 경험이 있는 사람이 최소 1명 이상 있어야 하고, 미 국립보건원(NIH)엔 자체 수행 중이거나 지원하는 소아암 연구 프로젝트를 의회에 보고하게 했다. 일본은 후생노동성 산하 ‘소아 만성 특정 질환’ 의료비 조성 계획에 모든 소아암 질환을 포함했다. 환아 가정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와 각 현은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현립 어린이병원과 거점 소아암병원에 1년에 200억~300억여원 운영비도 제공하고 있다. 각 현립병원이 환자 수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최선의 인력과 시설, 장비를 갖추고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