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근무 도중 뇌출혈로 쓰러졌는데도 외과 수술을 집도할 당직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가 사망한 사건을 두고 거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사건의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이를 계기로 중증 외과 수술 인력 부족에 대한 국가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아산병원 등에 따르면, A간호사는 일요일인 지난달 24일 오전 6시 30분쯤 서울 송파구 병동으로 출근한 직후부터 두통을 호소해 동료들이 건물 1층 응급실로 옮겼지만 뇌출혈로 쓰러졌다. 하지만 당시 아산병원의 신경외과 뇌혈관 담당 교수 3명 가운데 개두술(開頭術·두개골을 열어 출혈 부위를 클립으로 동여매는 것)이 가능한 2명은 각각 해외와 국내에서 휴가 중이었다. 이에 당시 당직 대기 중이던 신경외과의 뇌혈관 시술 전문 교수가 대퇴동맥을 통해 코일을 뇌혈관에 밀어넣어 채우는 색전술(塞栓術)을 검토했으나, 뇌혈관 조영술을 통해 나타난 상처 부위 특성상 이는 어렵다고 판명됐다. 간호사는 당일 오후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며칠 뒤인 지난달 30일 숨졌다. 아산병원 측은 “지방 휴가 중이던 의사가 복귀해 수술하는 시간에 비해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게 더 빠를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사건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지난달 31일 ‘세계 50위 안에 든다고 자랑하는 병원이 응급 수술 하나 못 해서 환자를 사망케 했다’는 글이 올라오며 파문이 확산됐다. 야당에서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고 했고, 보건복지부가 4일 송파구보건소와 함께 현장 점검에 나섰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성명에서 “의사 인력 부족이 진료과의 불균형 등을 야기하는 핵심적 문제”라며 “17년째 제자리걸음인 의대 정원을 수요에 맞게 대폭 확대하고, 응급·외상 등 필수 의료 양성 과정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문재인 정부에서 (의료 취약 지역 필수 공공 의료 인력을 양성하겠다며) 추진하다가 중단된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증원 방안을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고 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아산병원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하라”고 나섰다. 대한간호협회는 “응급실 이송부터 전원까지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한다”고 했다.

반면,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성명에서 “대한민국의 신경외과 의사는 인구 대비 적은 편이 아니다”라며 “안타까운 사건을 의대 신설이나 의대 정원 증원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음흉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지금 환경에서는 의사 정원을 늘려도 누가 과연 사람을 살리는 과로 지원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선호과에만 유독 의사가 몰리고 고난도의 외과 등은 만성 인력난에 시달리는 의료계의 현실이 의사 정원 늘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종합병원의 한 신경외과 교수는 “뇌 분야는 수술도 힘들고 소송에라도 걸리면 책임을 의사 혼자 다 뒤집어써야 한다”며 “신경외과에서도 열에 아홉은 상대적으로 편한 척추 쪽으로 진로를 정한다”고 했다.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40대 이상의 실력 있는 뇌혈관외과 의사는 거의 고갈 상태로 가고 있다”고 했다. 한 개원 의사는 “신경외과 등 고난도 중증 환자 대상 전공을 하고도, 전공을 포기한 채 피부과·성형외과 등을 진료 과목으로 개원하는 의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아산병원 외 다른 대형 종합병원들도 뇌혈관 담당 신경외과 교수는 2~4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최근 교수들 상당수가 외래와 수술에 더해 당직 근무까지 갈수록 업무 부담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뇌혈관 수술의 위험도와 중증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 수가도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대한뇌졸중학회는 “정부 지원 등을 통해 365일 작동하는 뇌졸중 치료 체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학회 조사에 따르면, 전국 163개 응급의료센터 가운데 30% 이상은 24시간 뇌졸중 진료가 가능하지 않은 상태다. 뇌경색 환자의 15~40%는 첫 방문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시기를 넘겨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