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은 어느 정당이든 선거 공약으로 들고 나오면 선거에서 지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윤석열 당선인이 작년 12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연금 개혁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한 말이다. 연금 개혁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는 취지다. 그는 공약집에서 “국민 모두를 위한 상생의 연금 개혁을 추진하겠다”면서 ‘노후 세대 소득대체율이 40%로 하락’한 점과 ‘2030 세대 연금 부담률이 지나치게 높아진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임기 내에 연금개혁 청사진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토론 과정에서 ‘연금 개혁 공동 선언’을 제안할 정도로 이 사안에 적극적이다. 어떤 식으로든 연금 운용 구조에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에서 복지 정책을 담당했던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금 개혁에서 일방적으로 안을 제시하면 거센 반대에 부딪혀 합의는커녕 진척도 없이 논의 자체가 끝나버릴 것”이라며 “사회적 숙의 기구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숙의 기구는 박근혜 정부 초기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통합한다는 목표로 출범했던 ‘국민행복연금위원회’와 비슷한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핵심 과제로 꼽히는 국민연금 개혁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수령액을 줄이거나 보험료율을 높이는 것. 이 중 윤석열 정부는 보험료율에 손을 댈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미 그 효과에 대해 시뮬레이션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나 올릴지에 대해선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지만, 윤석열 당선인 대선 공약에 관여한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전 보건사회연구원장)는 과거 논문에서 16~17%를 제안한 바 있다. 소득대체율(연금액이 생애평균소득과 비례해 얼마나 되는지)은 40%를 그대로 가져간다는 전제다.
현행 보험료율은 9%로 1998년 이후 24년째 유지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4대 공적연금 장기 재정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보험료율을 유지할 경우, 나가는 돈은 많고 들어오는 돈은 적어, 국민연금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한다. 그 결과, 오는 2055년 수령 자격이 생기는 1990년생(현 33세)부터 받을 수 있는 연금이 0원이 되는 사태에 직면한다. 문재인 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2018년 보험료율을 12~15%까지 올리도록 한 보건복지부 연금개혁안을 검토했지만 정치적 역풍을 의식해 접은 바 있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전 한국연금학회장)는 “보험료율을 올리는 형태 연금 개혁은 필연적으로 저항에 부딪히기 때문에 그 저항을 최소화할 방향을 고민해봐야 한다”면서 “이제는 고갈 문제가 워낙 심각해진 상황이라 누군가 ‘연금 개혁’이라는 악역을 맡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연금 개혁 방안은 결국 가입자 노후 소득 보장을 강화하면서 연금 부담과 수급 균형을 함께 추진하는 ‘투 트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연금 전문가인 김동섭 한림대 객원교수는 “보험료 인상이란 ‘채찍’만 아니라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늘려 연금 수령액을 높이고, 국민연금 가입으로 기초 연금액이 깎이는 이들에게 감액 제도를 없애는 ‘당근’을 동시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국회 법 개정을 거쳐야 하는데, 김용하 교수는 “여소야대에서 연금 개혁은 민주당 동의가 필요하다”면서 “(현 정부가) 연금 개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 공약집에는 연금 개혁 방향에 대해 국민연금⋅기초연금⋅퇴직연금⋅주택연금⋅농지연금을 포함한 총체적 다층 연금 개혁이란 대목이 있다. 현재 소득의 8.33%를 내는 퇴직금 중 3%를 떼 국민연금에 붙여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없이 재정 안정을 꾀하는 대책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노동계가 퇴직금은 사회보험과 관련 없는 ‘후불 임금’이라고 반대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이 밖에 ‘1인 1국민연금’(의무화)도 공약에 들어 있다. 국민연금 혜택을 못 받고 있는 미가입자들까지 다 가입시켜 혜택을 누리게 해주자는 의미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후보 시절이던 선거 막판 토론회에서 ‘연금 개혁을 위한 공동선언’을 제안하면서 ‘공적연금 통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일본처럼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을 전부 통합해 국민연금 수준으로 맞추자는 내용이었다. 다만 공무원연금에 정부 재정이 투입되고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간 보험료율 격차가 큰 상황에서 당장 통합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