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관련 기업에 다니는 유충언(29)씨는 얼마 전 ‘아너소사이어티(고액 기부자 모임)’에 가입했다. 6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모은 3000여 만원을 시작으로 5년간 총 1억원을 내기로 약정했다.
유씨 가족은 ‘패밀리 아너’다. 어머니 송주온(60)씨는 ‘여성 기업인 1호’로 2010년 아너 회원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여행 그룹 BT&I를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 유원희(61) WY치과 원장도 2013년 아너 회원이 되면서 ‘부창부수(夫唱婦隨)’를 실천했고, 이제 유씨가 그 대열에 합류했다. 유씨 부모는 가족 생일을 비롯해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수천만 원씩 기부를 해왔다. 그런 부모를 보면서 자란 유씨가 기부에 눈을 뜬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유씨는 “뭔가를 나누면 더 크게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다”면서 “부모님이 기부하라고 시킨 적은 없다. 그냥 남을 도우면서 행복해하는 (부모님) 모습을 보면서 ‘아 저게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기부 습관을 승계하는 이른바 ‘패밀리 아너’는 725명. 317가족이다. 전체 아너 회원 4명 중 1명(26.4%). 조흥식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은 “기부 명가(名家)가 늘고 있다”면서 “한 가족의 나눔은 우리 사회의 더 큰 나눔을 이끄는 계기”라고 했다.
‘아너 회원’인 서울 영등포구 원조호수삼계탕 백운기(47) 대표는 2012년부터 매월 300만원을 내고 있다. 기부액이 1억원을 넘은 뒤로 아내 임현진(45)씨와 맏딸 희원(17)씨 이름으로도 차례로 1억원을 약정했다. 둘째 딸(14)과 막내아들(9)까지 다섯 가족이 모두 아너 회원이 되는 게 목표다. 백 대표의 기부 생활은 아버지 영향이 컸다. 그의 아버지는 남대문시장에서 새벽 리어카 장사를 하며 모은 돈으로 1990년 삼계탕 집을 차렸다. 지금 백 대표가 이어받은 그 가게다. 아버지는 혼자 사는 어르신이나 어려운 이웃에겐 음식 값을 받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아버지가 남몰래 주변 학교에 ‘넉넉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수천만 원을 기부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느낀 바가 컸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백 대표는 아버지 뜻을 이어가기로 다짐했다. 그는 “나중에 보니 아이들도 유니세프나 기아대책 같은 단체에 소액 후원하고 있더라”면서 “스스로 나눔의 기쁨을 알아가는 것 같아 흐뭇했다”고 전했다.
‘나눔 DNA’를 퍼뜨리는 양태는 다양하다. 가족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그 그리움을 담아 고인(故人) 이름으로 기부하는 이도 적잖다.
신홍식(67) 아트빌리지 대표는 2012년 아너 회원이 됐다. 지금까지 4억50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해와 올해는 돌아가신 부모(신현철·김옥순씨) 이름을 아너 회원 명부에 올렸다. 어린 시절 부모가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걸인이나 끼니 챙기기 힘겨운 이웃에게 매번 식량을 나눠주는 걸 보면서 자란 덕에 사후에라도 그 심성을 기리고 싶었다. 신 대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며 ‘(우리 아들) 잘했다’ 하실 것 같다”면서 웃었다. 유족들이 고인을 기려 아너 회원에 고인 이름을 올린 규모는 73명에 이른다.
시인 겸 화가 이향영(78)씨는 지난해 1억원을 기부해 ‘아너 회원’이 됐다. 이어 작은아들 이유빈씨 이름으로 1억원을 더 내놨다. 큰아들 유진(50)씨도 동참, ‘아너 세 모자(母子)’가 됐다. 유빈씨는 미국서 공부하다 서울대에 교환학생을 왔던 1992년 기숙사에서 감전사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미국에서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노숙자들을 위해 내놓을 정도로 나눔에 적극적이었던 아들을 생각하며 이씨는 ‘아너 회원’에 아들 이름 올리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랬다. 이씨는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했을 일을 대신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