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낮 12시 헌혈의집 서울 신촌센터. 20여 대기석이 텅 비어 있었다. 침대 7개 중 하나에만 헌혈자가 누워있을 뿐이었다. 신촌센터는 주변에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등 대학이 몰려 있어 전에는 하루 평균 80여 명이 헌혈하느라 팔을 걷곤 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그 규모가 20여 명대로 줄었다.
대한적십자사가 운영하는 다른 헌혈의집 143곳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난 21일 헌혈의집 서울 영등포센터를 찾은 하루 헌혈자는 27명뿐이었다. 2019년 시간당 평균 5~6명, 하루 60여 명이 헌혈을 위해 들르던 곳이었는데 반 토막 넘게 줄어든 셈이다. 정수정(51) 영등포센터장은 “코로나 대유행이 본격화하면서 사람들이 헌혈하다가 코로나에 감염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헌혈자는 2015년 287만명을 정점으로 소폭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2019년 261만명으로 뒷걸음질하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2020년에는 243만명으로 전년 대비 7% 줄면서 타격이 커졌다. 그러다 올해는 감소세가 더 두드러져 지난 25일까지 195만명에 그치고 있다.
헌혈자가 급격히 줄면서 혈액 수급은 비상이다. 경기도 한 대학병원에서 22년째 근무 중인 임상병리사 A(49)씨는 “코로나 4차 대유행 이후부터 혈액 공급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수요를 계산해 하루 2~3번 혈액을 신청하는데 10월에 공급받은 양은 신청량의 15% 수준에 그쳤다”고 했다. 혈액원에 혈액을 더 달라며 연락하면 “주고 싶어도 줄 혈액이 없는 사정 뻔히 아시지 않느냐”는 푸념만 돌아온다고 한다. 이 병원 한 교수는 “수술 일정을 환자 사정이나 의학적 고려가 아니라 혈액 공급에 맞춰 짜고 있다”면서 “전국 어느 병원이나 다 마찬가지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적십자사 혈액 보유 현황에 따르면 26일 기준 적혈구 제제(製劑·product) 혈액 보유량은 1만8319유닛(unit·혈액 용량 단위로 보통 300~500mL). 적혈구 제제는 만성 빈혈 환자와 수술 또는 외상으로 총혈액량의 15% 이상 출혈이 있는 환자 치료에 이용된다.
1일 평균 소요량 4945유닛을 고려했을 때 3.7일분에 불과한 수치다. 혈액 보유 상태는 1일 소요량을 기준으로 의료 기관에 공급 가능한 재고와 검사 종료 후 의료 기관에 공급 가능한 혈액을 합한 것. 대한적십자사는 적혈구 제제가 5일분 이상이면 ‘적정’으로 판단한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적십자사를 통해 파악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혈액 보유 상태가 5일분 이상으로 ‘적정’인 날은 85일이었는데 올해는 1~9월 10일에 불과했다. 특히 델타 변이 전파로 4차 대유행이 본격화한 7월부터 9월까지 92일 동안은 ‘적정’인 날이 하루도 없었다. 엄태현 대한수혈학회 이사장은 “병원 현장은 늘 혈액 부족으로 허덕인다”며 “의료 현장에서 보면 적정 보유량은 10일분 정도인데 올해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라고 말했다.
헌혈자가 줄어들자 헌혈의집 직원들이 나서고 있다. 정수정 영등포 센터장은 “철분 부족 등 여건이 되지 않는 직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은 주기에 맞춰 헌혈한다”며 “모든 직원이 늘 채혈 침대 옆에 있는 우리라도 계속 헌혈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적십자사는 헌혈 활성화를 위해 코로나는 호흡기 감염병이기 때문에 혈액을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 내용과 헌혈의집을 매일 소독하면서 코로나 방역 위생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 알리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채성 헌혈홍보팀장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단체 헌혈을 장려하고 헌혈할 수 있는 장소를 더 늘려 활로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