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변이 확산에 따라 세계적으로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미국과 영국 등 백신 접종 선진국들은 ‘또다시 셧다운(봉쇄)은 없다’며 방역 빗장을 서서히 풀고 있다. 백신 접종이 상당 부분 이뤄진 것에 따른 자신감 때문이다.
미국에선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코로나 하루 확진자가 10만1171명 발생해, 지난 2월 6일 이후 약 6개월 만에 처음으로 10만명대를 넘어섰다. 하지만 미국이 다시 봉쇄 정책으로 갈 가능성은 낮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1일 “발병 자체를 막을 정도는 아니지만 지난해 겨울의 봉쇄 상황이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 정도로 백신 접종자가 충분한 상황”이라고 했다. 봉쇄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은 지난달 19일 사회적 거리 두기, 실내 마스크 착용, 모임 제한 등 모든 방역 규제를 해제했지만, 최근 코로나 확진자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달 15일 영국의 일일 확진자는 6만명이 넘었지만, 최근에는 2만~3만명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영국이 방역 조치를 해제한 결정의 밑바탕에는 높은 백신 접종률이 있다. 현재 영국에서는 인구 중 57.2%가 백신 접종을 모두 완료했고, 70.2%는 1회 이상 접종을 마쳤다. 사지드 자비드 보건장관은 “확진자 증가보다 중요한 것은 입원과 사망자 수인데, 이들과 감염과의 연결 고리는 매우 약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 국가에 비해 백신 접종률이 크게 낮은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 1차 접종을 마친 사람은 1947만여명으로 전 인구의 37.9% 수준이지만, 2차 접종까지(얀센은 1차) 마친 접종 완료자는 714만여명으로 인구의 13.9% 수준에 그치고 있다. 낮은 접종률은 중증 환자와 사망자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주간 평균 중증 환자수는 280명으로 2주전(159명)보다 76%가량 폭증했다. 같은 기간 사망자 역시 17명에서 27명으로 59%가량 증가했다.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중환자실 역시 546개에서 360개로 186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1차 접종만으로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델타 변이의 예방 효과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일단은 접종률을 높이는 데 방역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교수는 “외국처럼 방역을 완화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려는 ‘위드 코로나’(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기) 정책에 대한 고민을 우리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그 전제는 충분한 백신 접종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모더나·노바백스 백신의 국내 도입이 잇따라 차질을 빚으면서 ‘9월 말까지 전체 성인에 대한 1차 접종을 완료하겠다’는 정부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해외 제약사들과 화상 회의를 갖고 국내 백신 공급을 앞당기기 위한 협의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정재훈 가천대 길병원 교수는 “기존 바이러스에 대해선 ‘집단면역 수준을 높여서 유행을 통제하겠다’는 전략이 가능했지만, 델타 변이 확산 상황에선 전 국민이 접종을 해도 유행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