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이 완료되었습니다.’

27일 오전 10시 본지 취재진은 유튜브에 떠 있는 잔여 백신 자동 예약 프로그램(매크로) 안내 동영상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그러자 3시간 만에 예약에 성공했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방역 당국은 “매크로를 통한 잔여 백신 예약은 편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차단하고 있다”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보통 백신 예약을 하려면 카카오나 네이버를 접속해 수시로 잔여 백신 물량을 확인해야 하지만 이 같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그런 수고를 덜고 쉽게 예약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런 ‘편법'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백신 예약 성공 여부가 천지 차이가 나는 셈이다. 지금까지 질병청은 전혀 우회 접종자 숫자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잔여 백신 예약 구조 왜곡 우려

최근 코로나 4차 대유행 여파로 잔여 백신 예약이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하루라도 빨리 백신을 맞으려는 이들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잔여 백신 공지가 뜨자마자 곧장 제로(0)로 변하기 일쑤다. 그런데 이 같은 불편을 피해보려는 일부 대상자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실제 소셜미디어에는 매크로 관련 글이나 동영상을 본 뒤 ‘덕분에 접종받았다’는 글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본지 취재진도 매크로를 써서 예약에 성공한 뒤 해당 의료기관에는 ‘취소’ 통보를 했지만 이처럼 ‘편법'을 통한 예약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대학생 김희수(24)씨는 “잔여 백신을 맞기 위해 종일 휴대폰을 들여다봤는데 결국 실패했다”면서 “그런 방법이 있는 줄 몰랐다”고 전했다. 직장인 정해성(25)씨는 “있지도 않은 백신으로 희망 고문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잡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손도 못빼고 잠시 휴식 - 폭염이 계속되는 27일 오후 서울역 광장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시민들을 상대로 코로나 바이러스 진단 검사를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현재로선 이런 방법이 법에 저촉되는지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이미 이 같은 ‘매크로 편법'은 잔여 백신 선착순 예약을 시작한 지난달부터 꾸준히 논란이 됐지만 아직 방역 당국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김기남 코로나 예방접종추진단 접종기획반장은 27일 “매크로 등을 통해 대리 예약을 하거나 (대리 예약 대가로) 사례금을 받는다든지 하는 부분이 처벌 가능한지는 사례별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면서 “매크로를 통한 잔여 백신 예약은 차단 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정을 모르는 소리다. 홍원기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매크로를 탐지해 방어하는 기술은 이미 나와 있다”면서 “처음부터 허술하게 예약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매크로 편법 때문에 정작 백신 접종이 시급한 대상자들이 순서가 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방역 당국은 만성 심장질환자·중증 폐질환자는 이미 우선 접종을 실시했으나 나머지 만성 질환자들은 의료기관 잔여 백신을 우선 접종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런데 잔여 백신이 금세 동나버리면 만성 질환자에게 돌아갈 백신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결국 백신 공급 차질이 문제

근본적으로 백신 물량을 충분히 제때 들여오지 못한 게 원인이란 지적이 있다. 언제 백신을 맞을 수 있는지 불안하니 잔여 백신이라도 빨리 맞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2분기부터 들어온다는 모더나 백신 4000만회분은 3분기에 접어들었는데도 “공급 차질로 늦어진다”는 소식만 들린다. 4000만회분이 예정된 노바백스는 하반기 공급 예정이었지만 미국 내 허가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교수는 “백신 접종을 하고 싶어도 공급이 달려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일선 의원보다) 대형 예방접종센터를 추가로 개소해 예약 시스템이 더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