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의료진이 병원 밖 환자와 원격 상담을 하고 있다. 이 병원은 원격 상담 대화가 자동으로 환자 차트에 문서로 입력되는 ‘보이스(voice)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을 개발해 원격 의료 상담에 쓰고 있다. /김지호 기자

갑자기 발생하는 어지러운 증세로 여러 차례 실신했던 김모(53)씨. 불안한 마음에 가급적 외출도 삼갔다. 그랬던 그가 요새는 마음 놓고 돌아다닌다. 실신의 원인을 찾고 대책까지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 피부 밑에 24시간 심전도를 체크하는 장치를 심었다. 심전도는 인터넷을 통해 중앙데이터 센터로 자동 전송된다. 비정상 심전도를 기계가 알아서 감지하고, 발생 시각과 그때 찍힌 심전도를 심장내과 전문의에게 이메일로 쏴준다. 이 과정에서 6초간 심장 박동이 멈추는 부정맥이 발견됐다. 실신 원인이었다. 이에 김씨는 심장 박동이 멈추면 자동으로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박동기를 심장 옆에 설치하는 시술을 받았다. 그는 실신 공포에서 벗어났다.

◇질병 모니터링, 원격 조절은 금지

최근 다양한 생체 지표나 검사를 환자 집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모니터링하는 장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심장 박동 힘이 약해진 심부전 환자는 혈액 순환이 정체돼 폐에 체액이 차오르면서 체중이 늘어난다. 심부전 환자가 수시로 전자 체중계에 올라가게 하면, 원격 전송된 체중 변화 데이터로 심부전 악화 여부를 조기에 잡아낼 수 있다. 전자 청진기로 호흡 소리를 재면 소리 데이터가 의사에게 전송돼 천식 증세도 원격으로 파악할 수 있다. 천식에는 휴대용 전자 폐활량 측정기도 쓰인다.

잠잘 때 코를 골다가 ‘커~억’ 하며 숨이 멎는 수면무호흡증 환자에게는 손가락에 끼는 체내 산소 포화도 측정 장치와 수면 시 공기를 불어넣어 주는 양압기 장치를 통해 수면무호흡증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당뇨병 환자는 몸에 붙이는 24시간 혈당 측정기로 식사와 활동량에 따른 실시간 혈당 감시를 할 수 있다. 만성 말기 신장병으로 복막 투석을 집에서 받는 환자들도 투석 장치를 통해 독소 제거가 제대로 됐는지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 파킨슨병 등 신경계 환자도 보행이나 낙상 등 이상 행동을 측정할 수 있는 손목 웨어러블 장치로 병세 진행을 체크할 수 있다.

이런 모니터링 데이터를 보고 응급 처치나 진단 목적으로 장치의 기능을 원격 조정하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원격 진료에 해당돼 금지돼 있다. 환자가 반드시 병원에 가서 의사 대면 진료를 받고 조절할 수 있다. 예컨대 환자 집에서 이뤄지는 복막 투석 강도를 신장내과 전문의의 판단으로 병원에서 원격 조절할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못 한다. 김영훈 고려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환자에게 정작 필요한 원격 조절 기능을 꺼놓는 코미디가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원격 질병 모니터링과 처치만큼은 당장 쓸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원격 모니터링과 왕진을 조합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집에 있는 환자를 각종 원격 모니터링 장치로 관리하는 의료서비스가 활성화돼 있고, 건강보험으로도 지원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질병이 악화하는 낌새가 발견되면, 전문의가 환자 집을 찾아가는 방문 진료가 이뤄진다. 원격과 방문 조합으로 병원 진료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도쿄 도심 신주쿠에 있는 유미노 클리닉은 주로 심장병 환자를 진료하는 내과다. 심부전으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환자 집에 심전도와 체중, 산소 포화도 등 원격 모니터링 장치를 설치하고 관리한다. 심부전 악화 조짐이 발견되면 심장내과 전문의가 환자 집을 방문해 각종 처치와 약물 처방을 조절한다. 방문 진료에 휴대용 심장초음파, 산소 투여기, 인공호흡기도 동원된다. 이렇게 했더니 심부전 환자의 재입원율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유미노 클리닉에서 이 서비스를 받는 심장병 환자는 최근 5년 사이 144명에서 893명으로 6배로 늘었다.

세브란스병원 재택의료팀 김장환(비뇨의학과) 교수는 “원격 모니터링과 전문의 왕진 조합은 거동이 불편한 만성질환자가 늘어날 초고령사회에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