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국민건강보험공단 한 직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콜센터) 직영화 및 직고용을 반대합니다’. 이 직원은 이 글에서 “(콜센터 직원들) 직고용, 직영화는 반대해야겠다”면서 “이런 행위는 공정의 탈을 쓴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콜센터 상담사 노조(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지부)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와 차별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면서 10일부터 전면 파업을 선언했다.

건보공단 콜센터 직원들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노노(勞勞) 갈등이 다시 타오르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건보공단 직원(5월 현재·1만5892명)의 10.3%에 해당하는 콜센터 직원 1633명을 정규직화하느냐다. 상담사 노조는 공단 태도에 변화가 없다면서 지난 2월 파업에 이어 또다시 총파업에 나선다. 반면 상담사 노조와 같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속한 건보공단 노조는 “콜센터 직접고용을 반대한다”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정권 초기 ‘비정규직 제로(zero)’라는 화두만 던져두고 뒷짐 진 사이, 각 공공기관에선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 내홍(內訌)이 정권 후반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MZ세대 화두는 ‘불공정'

MZ(밀레니얼 Z)세대로 통하는 젊은 건보공단 직원들은 ‘불공정’을 화두로 콜센터 직원들 직고용이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다. 한 건보공단 직원은 “나는 공정한 채용 절차를 거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는데, 왜 콜센터 직원들은 ‘결과의 평등’만을 맞추려고 하느냐”고 했다. 지금도 콜센터 직원이 공단 정규직 채용에 응시하면 서류 전형에서 가산점 등 우대 사항을 주는데 직고용까지 추진하는 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자”던 문 정부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가 건보공단에서도 재연되는 셈이다. 현재 공단 직원 900여 명이 모여 있는 채팅창에선 지난 2019년 서울교통공사 직고용 과정에서 친인척 채용 비리가 있었던 것까지 예로 들며, “상담사 직고용이 이뤄지면 친인척 채용 비리가 생길 수 있으니 공익 감사를 청구하자”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진다.

콜센터 직원 정규직화로 인한 인건비 부담이 불어난다는 것도 ‘정규직화 반대’ 논거 중 하나다. 실제 기획재정부와 국회 추경호 의원실(국민의힘)에 따르면, 문 정부 들어 건보공단 인건비는 2017년 1조715억원에서 2021년 1조4685억원으로 이미 37.0% 급증했다. 공단이 청소·운전 등 용역 직원을 정규직화하고, 신규 채용도 늘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단 전체 직원의 10% 규모에 육박하는 콜센터 상담사 직고용까지 이뤄지면 인건비 지출이 더 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콜센터 “왜 우리만 외면하나”

콜센터 상담사 노조는 불만이 크다. 이미 건보공단이 청소·경비 용역 등은 직고용했으면서, 왜 고객센터 상담사만 외면하느냐는 태도다. 상담사 노조는 최근 “4대 보험 기관 중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고객센터는 이미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역시 고객센터 업무를 직영화했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업무를 하는 다른 공공기관 콜센터와 같은 대우를 해달란 의미다. 지난 2월 파업 이후 갈등을 중재할 ‘사무논의협의회’가 꾸려졌지만, 상담사들이 제외된 것도 이번 파업을 결심한 계기로 작용했다.

이 같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둘러싼 논란은 해결이 쉽지 않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자회사를 통해 직고용할지, 기존 위탁 체제를 유지하면서 업무 환경과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할지 당사자들과 외부 전문가들이 충분히 논의하고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모호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거듭하면서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아쉬움을 남긴다. 고용노동부 담당자는 “각 사업장 문제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사업장 협의회를 두고 갈등 당사자 의견을 수렴해 해결한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