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코로나 감염·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수만년 전 비슷한 전염병에 감염돼, 코로나에 잘 대응하도록 유전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미 애리조나대 진화유전학자 데이비드 에너드 교수 연구팀은 지난달 미국체질인류학자협회(AAPA) 연례 총회에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5개 대륙 26개 민족에 속하는 2504명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한 결과 “동아시아인들에게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인체 감염 과정에 관여하는 420종 단백질이 현저히 많고, 이는 42개 유전자에 변이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과거 코로나와 유사한 전염병을 겪으면서 적응한 결과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유전자 변이는 2만5000~5000년 전까지 활발히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이 시기에 동아시아에서 코로나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확산됐고, 여기에 오랜 기간 노출되면서 유전적으로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42개 유전자 변이가 왜 감염 및 사망을 줄이는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에너드 교수는 “42개 유전자 변이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새로운 코로나 치료법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론도 있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진화 유전학자인 루이 퀸타나-무르시는 “DNA 변화가 감염 억제에 기여할 수 있다고 추측할 수는 있으나, 정확한 영향은 알 수 없다. 엄격한 봉쇄, 광범위한 마스크 착용 등 많은 사회적 요인이 동아시아의 감염을 억제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 서울대병원(감염내과 오명돈·박완범 교수)과 서울대(생화학교실 김상일·정준호 교수, 전기정보공학부 노진성·권성훈 교수) 공동 연구팀이 특정 집단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면역세포를 이미 가지고 태어났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코로나 환자 16명 중 13명이 감염된 지 1주 만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중화항체를 생성하는 면역세포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연구진은 “연구 대상이 너무 적어 특정 나라나 인종에 비해 코로나에 대항하는 항체나 면역세포가 더 많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밝혔다.